1988년 부산 초연을 시작으로 22년간 국내외에서 1,400여 회 공연을 해 온 이영식 문화선교사(60세)가 금년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앞두고 ‘빌라도의 고백’ 전국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오랜 미국 생활을 거쳐 2008년 귀국 후 국내에서 다시 선보이는 무대로, 햇수로는 9년만이다.
 
‘빌라도의 고백’은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로마황제에게 보낸 실제 보고서와 성경 속의 사건들을 극화한 작품이다. 빌라도의 입을 빌어 예수의 복음 전파, 이적과 사역들, 유대인들의 음모와 체포, 불법재판과 십자가 처형, 부활까지의 사건들이 마치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모노드라마인 탓에 이 선교사는 빌라도를 비롯해 예수, 제사장, 군중 등 다양한 인물들을 소화한다. 저마다의 특성을 살려 다양한 몸짓과 목소리로 인물을 표현해내는 일인다역 연기는 현란하기까지 하다. “나보다 빌라도의 마음을 더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이 선교사의 말처럼, 극에서는 무엇보다 빌라도의 내면 연기가 압권이다.
 
연극의 첫 장면에서 빌라도는 사방을 진동시키는 천둥 속에 홀로 서 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반복되는 주기도문 구절 사이로, 빌라도는 큰 숨을 들이마시고 첫 대사를 내뱉는다. “내가 예수를 못 박게 한 빌라도입니다. 하지만 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고백은 빌라도라는 인물을 한 마디로 규정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민중봉기가 두려워 죄 없는 예수를 풀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자, 용기 없음에 대한 자기 위안이다.
 
‘빌라도의 고백’을 단순한 모노드라마를 넘어, 선교드라마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관객을 단순히 방관자가 아닌 연극의 주체로 끌어들인 점이다. 빌라도의 변명을 보며 한번쯤 자기를 되돌아보는 관객들을 향해 빌라도는 독배를 마시며 마지막 일성을 던진다.  “난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