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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집(5)
종교개혁과 성경 모티브
2017-04-24 오전 10:16:00    성결신문 기자   


회화나 조각, 문학 등에서 표현, 창작 등 작품의 시작에는 작가의 내부 충동이 있다. 이것을 모티브(Motive)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동기(動機)라고 할 수 있다. 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배경에는 성경이 원인이 된다. 물론 당시 가톨릭교회의 제도나 사상에 대한 반발이 주요한 원인이지만 성경의 재발견이 가장 핵심 배경이 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 개혁을 희망하는 우리는 개혁 모티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의 원인이 성경에 있지 않는가? 하는 가설에서 출발하여 이 글을 구성했다.  


1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연구가들이었다. 루터가 그랬고, 존 칼빈이나 얀 후스(Jan Hus)가 그랬다. 마르틴 루터는 실로 다양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설교가이자 교사였으며 웅변가였고 번역가였다. 또한 신학자였고 작곡가였으며, 지극히 가정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루터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누가 뭐라 해도 그가 옮긴 독일어 성경일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이 책만큼 한 나라의 발전과 정신적 유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종교개혁에는 중산 계층의 등장과 무역의 증대, 그리고 인쇄 기술의 발달도 한 몫씩 했다. 그렇지만 핵심적인 요인은 바로 루터의 성경이었다. 칼빈의 경우 자신의 성경관을 자신의 책, <기독교 강요> 1권 6장-12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루터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 모든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서 성경을 실천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칼빈에 따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학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통치 영역에서도 유일한 원리(라틴어로 unicum principium)라고 했다. 후스는 영국의 개혁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의 사상에 크게 심취하여 위클리프의 저술들을 자국어인 체코어로 번역하였고, 동시에 성경도 자국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모든 믿음의 원천을 교황의 말이나 교리가 아닌 성경에 두었다.  

개혁자들은 성경 연구로부터 종교개혁의 모티브(동기)를 발견하였고, 사상적 바탕이 되는 풍부한 양분을 공급받았다. 주지하다시피 성경으로부터 발견한 종교개혁의 명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는 개혁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였다. 성경은 신앙을 낳고 자라게 하는 수단으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권위를 부여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한 사람들이었다. 

16세기 초에 복음주의자들을 이끌던 인물 가운데 나바르의 마거리트(Marguerite of Navarre)가 그런 인물이었다. Marguerite는 가톨릭교회 내에서의 개혁을 주장했으며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이 승리하는데 숨겨진 공로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성경을 통해 신앙을 새롭게 이해하고 체험하였으나 초기에는 파리대학교 학생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1533년 10월 1일, 학생들은 연극을 통해 이 여성을 성경을 읽고 정신 나간 주부로 묘사했다.   

2성경주석 작업이 종교개혁을 더욱 추진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이해하기 더욱 어려웠다. 칼빈이나 루터, 멜란히톤, 그리고 츠빙글리 같은 개혁자들은 성도들이 학자이건, 필부(匹夫)건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독자들이 스스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독하고 이해하면서, 어려운 구절들을 도움을 받아 해석하게 된 것이다. 루터는 1512년 10월 18일에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스타우피츠의 후임으로 성서강의(Lectura in Biblia)를 위한 신학부 교수로 1513년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이 후 그는 평생토록 강단에서 성서 강해만 했다. 구약성서의 경우 창세기, 이사야, 소선지서, 전도서와 아가서 및 시편(세 번)을 강해했으며, 신약성서의 경우 로마서, 갈라디아서(두 번), 디도서, 디모데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요한1서를 강해했다. 1545년 11월 17일 창세기 강의가 끝나면서 루터의 교수활동도 끝이 났다. 

그는 (중간에 강의를 하지 못한 기간을 제외하고) 총 27년 혹은 28년간의 교수생활 중 4년 반 정도만 신약성서를 다루었고 나머지는 구약성서를 강해했다. 오늘날로 생각할 것 같으면 루터는 구약학 분야의 성서학 교수였다. 따라서 그의 수업의 주 교재는 성서였고 교수생활의 대부분을 주석연구로 보냈던 것이다. 오늘날의 종교개혁이 루터의 신학작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때 개혁자들에게 성경주석은 매우 중요했던 신학작업이었다.  

3개혁자들은 강해설교자였다. 그들은 성경의 지평과 성도들의 지평을 융합하여 성경의 밑 바탕에 깔려있는 원리들을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설교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했던 설교들이 대표적이다. 가톨릭교회들처럼 교황청에서 내어준 본문이나 텍스트를 중심으로 강론했던 것이 아니고, 성구집이나 설교자가 생각하는 구절을 놓고 설교한 것이 아니었다. 성경 책 전체를 계속하여 설교하는 연속 설교의 형태를 취했다. 예를 들면, 칼빈은 오직 한권의 책, 신명기를 1555년 3월 20일부터 1556년 7월 15일까지 약 200회의 설교를 했다. 

얀 후스의 경우 32세 되던 1401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그 다음 해 당시 프라하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교회인 베들레헴 교회의 설교자로 지명되었다. 사실 그의 개혁운동은 설교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개혁운동의 중심무대는 바로 목회현장이었으며, 운동의 형식은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행해지는 열정 있는 ‘대중설교’였다. 그의 재능은 말재주에 있지 않았다. 그의 설교의 힘은 바로 본문자체에 있었다. 그는 해박한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성경본문을 재발견하여 단순 명쾌하게 교회개혁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복잡한 관습과 전통에 의해 가리워져 있던,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진리들을 성경 속에서 찾아내어 전했다. 

후스는 성경의 최고 권위를 강조하였다. 성경에 근거한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누구나 성경에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 라틴어로 진행되는 예배, 그리고 그 가운데 봉독되는 라틴어 성경은 신자들의 삶을 변화시켜 올바른 신앙으로 유도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이 읽혀져야 했다. 그래서 후스는 체코어로 성서를 번역, 출판함으로써 대중이 성경적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제 성경은 더 이상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것이 된 것이다. 그는 성경번역을 통해 자신의 개혁운동이 성경의 기준 위에 서 있음을 대중들에게 인식시켰다.

4종교개혁 당시 성경을 주제로 만든 작품들이 인기였다. 이를테면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같은 책들이 신학적 주제를 다루는 중요한 저술이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모아 통합된 명제들로 제시함으로 사람들이 성경을 일관성 있게 보도록 만들었다. 

이를 통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모순 없는 하나의 세계관을 수립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역사가 피에르 앵바흐 드 라 투르(Pierre Imbart de La Tour)는 이렇게 썼다. “칼빈이 만든 첫 작품은 <기독교 강요>이며, 두 번째 작품은 제네바였다” 책과 도시가 서로 보완했는데, 하나는 공식화된 교리요, 다른 하나는 적용된 교리였다. 즉 칼빈은 성경이 교리를 만들었고,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현실을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의 모티브는 성경이었던 것이다. 

루터는 음악이 신학 다음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하였다. 음악은 신학과 닮은 점이 많은데 특히 영혼을 고치고 영들을 소생시키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가톨릭 교회에서 한정된 이들에 의해서만 사용되어 오던 성가를 만인의 소유물로 돌려주었다. 이전의 그레고리안 찬트에서는 예배시 회중은 잠잠히 있고 성가대의 전문가들만이 영광송(Doxology)을 번갈아 불렀다. 

그러나 루터는 일반 회중도 찬송을 부를 수 있게 전례 즉, 예배 양식을 개혁하였으며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비롯하여 많은 찬송곡을 작사, 작곡 하였다. 그의 곡들은 ‘코랄’이라는 장르로 자리 잡는다. 그는 자신의 ‘작고 못생긴 목소리’를 불평했지만 플루트와 류트를 연주하는 능수능란한 음악가였다. 루터는 사람을 움직이는 찬송의 능력을 믿었다. 그러면서 찬송은 보통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운 이들에게도 성경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찬송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개혁자들은 성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통해 성도들의 믿음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상에서 보듯 개혁자들의 관심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나 신학이라는 학문적 혹은 교리적 관심보다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에서 개혁이 시작되었다.  즉, 개혁자들이 추구했던 근본 동기나 그 과정은 일반적 의미의 종교개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쇄신운동이었다. 일부에서는 종교개혁보다는 ‘교회개혁’이란 용어가 개혁의 정신에 맞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종교개혁이란 ‘기독교 회복운동’이었고 그것은 기독교의 본래적인 신앙과 생활에서 이탈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형식화된 의식적 생활에서 갱신해서 ‘사도적 교회’, ‘성경적 교회’로의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즉 종교개혁은 오도되고 변질된 신학과 교회로부터 ‘성경적 기독교’로의 회복운동이었다. 개혁자들은 개혁의 모티브를 그 무엇보다 성경에서 발견하였고, 성경의 권위로부터 출발했다.  그들에게 있어 교회의 개혁이나 교회의 쇄신은 바로 성경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어떤 교리나 신학도 성경의 권위보다 앞설 수 없으며, 어떤 신자의 삶도 결코 성경의 권위보다 우선 될 수 없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교회가 받아들인 교리와 전통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정당성을 항상 성경에 비추어 끊임없이 반추하고 검증하였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성경의 우선성을 철저하게 강조했다 할지라도 기독교전통을 다룬 다른 신학저작들을 무시하거나 그 가치를 외면하지 않았다. 성경이 그들 사상의 무게 중심이었지만 성경과 모순이 되지 않는 저작들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갖고 대했다. 종교개혁의 모티브는 유일하게 성경이었다. 개혁의 시작을 성경에서 출발했고, 성경을 강해하는 가운데 교회개혁이 계속되었다. 오늘날의 개혁교회들 역시 성경에서 출발해야 한다. 

[최종인 목사 / 평화교회]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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