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태풍이 휩쓸고 간 땅 위에 하얀 꽃이 눈송이처럼 피었다. 지금쯤 평창 봉평골에는 메밀꽃이 눈부시다. 이효석은 그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에서 “ …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라 했다.
쏟아져 내리는 달빛을 받으며 피어나는 흰 메밀꽃을 보면서, “ …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듯하다 … ” 했으니 이효석의 서정성에 탄복할 뿐이다.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꽃이 메밀꽃일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면 지난겨울 올림픽이 개최되어 전 세계 사람들로 북적거린 뒤 외면당하고 있던 쓸쓸한 평창 들녘이 활기를 띨 것이다. 흰 메밀꽃을 보기 위해서다.
메밀꽃밭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자연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서 라든지,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꽃의 화려함이나 향기를 찾음은 더욱 아닐 것이다. 메밀꽃의 ‘단순함’, ‘순박함’, ‘초라한 아름다움’,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작년 효석문화제 때 찾았던 평창의 작고 초라한 메밀꽃 송이는 복잡하고 계산에 익숙해진 인간에게 ‘단순함’과 ‘순수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임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의미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듯 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대한 구분에 있어 서툰 것 같다. 어떤 일을 바쁘게 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성공, 출세가 중요한 일 같이 보이지만 세상에는 그것보다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 많다.
밥 버포드(Bob Buford)가 쓴 ‘하프타임’을 보면, 인생의 전환점을 돌아 후반기에 들어서면 ‘성공’에서 중요한 일로 삶의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메밀꽃이 필 무렵이다.
일년 사계절 가운데 봄, 여름이 지나갔으니 이제 후반전이다.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평창에 한번 다녀오시면 어떠할까?
소금처럼 피어나는 메밀꽃을 보느라면 초라하지만 의미있는 일, 볼품없지만 중요한 일,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일, 그리고 단순함, 순박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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