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이 멎었다는 당신의 말을 어느 숲길에서 떠올렸습니다. 이파리 하나가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나기철 시인의 ‘9월’이란 시이다.
9월은 여름과 가을을 연결하는 통로와 같은 시간이다. 여름이 끝난 것 같은데 아직 남아있고, 가을이 온 것 같은데 아직 여름의 흔적이 남아있다.
9월 어느 날, 시인은 계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숲길을 거닐며 무더위, 장마, 폭염의 길고 지루한 여름의 ‘설레임’이 멎은 것을 느끼며 가을의 향내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름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고 아직 남아서 헐떡거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시인은 그 표현을 ‘이파리 하나가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라고 했지 않았을까? 관찰력, 주의력, 표현력 그리고 시절을 꿰뚫는 감성이 대단하다.
토요일 오후에 모처럼 운동 삼아 관악산 숲속을 거닐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여름과 전혀 다른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숲의 향기는 가을이다.
나뭇잎들은 꼿꼿하던 고개를 숙이고 가을을 준비하듯 하고, 빨간 잠자리가 낮게 맴돌고 있다. 언덕바지를 올라 숲속으로 더 들어가니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며 나기철의 ‘9월’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아직 남아있는 여름으로 곤욕을 치루지만 결국, 그 모든 ‘설레임’은 멎고 가을이 올 것이다. 삶의 현장에는 크고 작은 설레임들이 얼마나 많을까? 풍랑치고 천둥, 번개, 때론 벼락으로 불면의 밤을 새워야 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
그러나 결국 그 모든 ‘설레임’은 멎게 될 것이다.
이만큼 인생을 살았으면 이파리 몇 개쯤 흔들리는 것도 뭐 그리 대수롭겠는가. 9월의 숲속은 여전히 이파리 몇 개가 흔들릴 것이지만, 그 설레임과 그 흔들림은 곧 멎을 것이고 가을 하늘은 푸르고 높게 펼쳐질 것이다.
올 가을은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향내 나는 열매가 맺혀 내 삶을 여물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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