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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땅은 형형색색으로 옷 입고 나타난다. 여름 내내 짙은 녹색이던 것들이 붉은색으로, 노란색으로, 갈색으로 그 옷을 입는다.

벼 이삭은 누렇게 익어 황금색 들판을 출렁거리고, 길가 코스모스는 흰색, 분홍색으로 그리고 빨간색으로 물든 꽃잎을 나타내고 있다.

향 짙은 사과는 붉은색으로, 천년을 산다는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든 왕관을 쓰고 이 가을을 수놓고 있다.

미당 서정주의 그의 시 ‘추일미음’에서

“울타리 밑 감물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촉규(접시꽃)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나는 이 가을에 무슨 물이 들었는고…“

하며 물들어가는 가을을 노래했다.

시인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을 보면서 사람이 산다는 것도 물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키웠을 것이며, 그렇다면 “나는 이 가을에 어떤 물이 들었는고…”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서정성이 풍부한 서정주의 시는 우리를 생각의 바다에 잠기게 한다.

이 가을에 나는 어떤 물이 들고 있을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했다.

복음 때문에 당한 고난의 상처들이 몸에 흔적으로 있었던 것이다. 몸에만 예수의 흔적이 새겨졌을까? 그의 얼굴에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영혼 깊은 곳에도, 삶의 현장에도 가득했을 것이고, 바울은 예수로 물들어 갔던 것이다.

40세 이전의 얼굴은 부모가 물려준 얼굴이라면, 40세 이후의 얼굴은 내가 만들어 가는 얼굴이라고 한다. 그래서 링컨은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라고 한 것 아니겠는가? 삶의 흔적은 그의 얼굴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미움과 분노로 산 사람은 미움으로 물들고, 분노로 물들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섬김으로 산 사람은 넉넉함과 친근함으로 얼굴에 나타날 것이다.

이 땅에 와서 물들어가는 가을을 수십 번 맞고 있는데, 과연 나는 어떤 물이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올 가을에는 또 어떤 색깔로 물들어 갈까?

산다는 것은 물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