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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대한성결교회 역사 기행과 믿음의 이야기들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역사 기행과 믿음의 이야기들
2021-09-13 오후 1:10:00    성결신문 기자   


총회로부터 100회기 기념 ‘2022년 달력(calendar)’에 대한 집필 의뢰를 받고, 과거 10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 중에 성결교회를 위해 땀을 흘리고 피를 쏟으며 헌신하였던 성결인들을 찾아서 성결교회 역사 기행 속에 담긴 믿음의 이야기들을 모아 보았다. 

성결교회에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을 소개하는 형식을 띄고 있는 내년도 달력은 2022년을 여는 1월은 100년 전 1922년 함경도 북청읍교회에서 일어난 곽재근 목사의 놀라운 전도부흥운동(또는 희망하는 개교회별 1월 따로 제작)을 시작으로 하여 각 인물들의 출생(이성봉, 이명직)과 소천(정순석, 홍대실, 김응조, 카우만, 김상준)에 맞추거나 5월 성결교회 창립일(정빈)과 6월 6.25 한국전쟁(문준경) 그리고 8월은 8.15해방(박봉진) 또한 11월은 해방 직후 11월에 개최된 재흥총회(천세광)에 맞추었다.

따라서 우리는 12인 인물을 담은 달력을 통해 성결교회가 동양선교회를 시작으로 1907년 한국 땅에 어떻게 시작되었고, 일제 지배 당시 받은 고난과 교회 재건 그리고 1950년 6.25 한국전쟁, 이후 교단 분립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달력이 아직 제작되기 전이지만 인물들 (1.간추린 생애소개 2.어록<語錄>)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월   인물

● 북청읍교회와 곽재근(郭載根, 1893.7.9. ~1970.2.17.) 목사 - 일백년 전 전도부흥운동   
1922년 4월 함경도 북청읍교회로 파송 받은 곽재근 교역자(1923년 안수)에 의해 한 달 뒤인 5월 22-23일 대대적인 전도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은혜 받은 성도들이 전도대를 조직하여 사방 30리 촌락으로 흩어져 전도한 결과 어포리교회, 예원리교회 등 5교회가 새로 개척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말라빠진 내 심령을 위해 늦은 비 내림을 간구하라.”                     “만우(晩雨)를 빌라” 중에서

2월   인물 

● 정순석(鄭順石, 1922.3.29.~1981.2.21.) 목사- 한국교회의 다미엔
신의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양시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공산당 탄압을 피해 잠시 후에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 속에 1.4후퇴 때 남하하는 UN군을 따라 가족을 북에 두고 월남하였다. 전쟁 후 휴전선이 그어지고 남북의 왕래가 끊어지자 가족을 생각하며 몇 해를 눈물로 지내다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기 위해 신학교를 들어갔다. 1959년 신학교를 졸업 후 인적(人跡)이 드문 두메산골 ‘영락원’이라는 음성나환자촌(충남 서산군 음암면 도당리)에 들어가 천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북한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여 독신을 고집하고 나환자들과 같이 움막에서 기거하며 평생 나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였다.(‘산정무한<山情無限>’으로 잘 알려진 정비석 소설가의 동생)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                                ‘설교 말씀’ 중에서

3월   인물   

● 홍대실(洪大實, 1901.10.6.~1971.3.2.) 권사 - 헌신과 믿음의 여장부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호의호식 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실은 늘 똑같은 회색 저고리와 밤색 치마에 고무신 터진 곳을 꿰매어 신으면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물질과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었던 신실한 여종이었다. 
성결대(현 총회본부의 238평 땅과 4층 건물을 지어 신학교 교사로 바치고, 안양 성결대 부지를 헌납)와 단독으로 자비를 들여 8교회(진지동교회, 강릉제일교회, 온양교회, 묵호교회, 속초교회, 백은교회, 고길리교회, 대전성결교회)를 설립하였다. 성결교회의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 초대 권사로 부인회 회장으로 봉사하였고, 성결교신학교(현 성결대) 4대 이사장과 예성 성락원 원장을 맡아 기도와 물질로 헌신하였다.

“인간 삶의 밑천은 믿음과 활동이다.”
            홍대실 권사 “좌우명‘ 중에서

4월   인물

● 김응조(金應祚, 1896.1.26.~1991.4.18.) 목사 - 한국교회의 모세
경북 영덕에서 출생한 김응조 목사는 12살 때 교회에 입교한 부친을 따라 기독교를 접하였다.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경성성서학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1926년 목사안수 받은 후 미개척 북선지방 감리목사로 임명받아 북간도까지 사역하는 중에 큰 부흥을 일으켰다. 유달산에서 신유를 체험하고 신사참배 거부로 성결교를 떠나 문서선교(‘생명지광’)를 하였다. 
해방이 된 1946년 성결교회로 다시 돌아와 서울신학교 교수로 초빙 받아 1961년까지 사역을 하는 중에 저작 활동에 주력하고, 1957년 교단 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1961년 이명직, 이성봉, 황성택 목사와 함께 WCC노선을 반대하여 복음진리동지회를 조직하고 이후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설립 시 주역의 역할을 맡았다. 1962년 9월 성결교신학교(현, 성결대)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이 되어 많은 후학들을 길러내었다. 『말세와 예수 재림』을 비롯하여 4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다하라. 만일 그렇지 않거든 물러나라” “조선교회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중에서 

5월   인물  

● 정 빈(鄭彬, 1873년경~1940년경) - 성결교회 창립의 주역
황해도 해주 출신인 정빈은 1905년 일본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수학(修學) 중에 일본 한인유학생 모임인 태극학회에서 주일마다 성경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신문>에 여러 차례 글을 특별 기고하였다. 1907년 5월 2일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같은 달 30일에 경성(현, 서울) 종로 염곡에 노방전도를 통해 얻은 구도자들을 모아 이 땅에 최초로 성결교회(복음전도관)을 설립하고 주임교역자로 사역하였다. 
1911년 경성성서학원이 설립되자 무교동복음전도관 주임교역자를 사임하고 경성성서학원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되어 후학을 가르쳤다. 동경성서학원 사사오 원장이 노방전도하다가 소천한 1914년 북간도로 넘어가 자유롭게 복음전도를 하였다. 1917년 다시 돌아와 안성복음전도관(1917년), 인천복음전도관(1919년)을 설립하고 성서학원 교수로 봉직하였다. 1921년 성결교회가 복음전도관에서 목회 본위의 기성교단으로 체제를 전환하자 다시 사임하고 북간도로 넘어가 동아기독교(현, 침례교 전신)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무명 전도인으로 오로지 복음전도를 하다가 황막한 만주 땅에서 생을 마치었다.

“참 자유는 특별한 곳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다”
             『태극학보』 (1906년) ”그리스도는 참 자유“ 중에서

6월   인물 

● 문준경(文俊卿, 1891. 2.2.~1950.10.5.) - 6.25한국전쟁 때 순교자,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문준경 전도사는 전남 신안의 암태면 수곡리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결혼 후 37세의 늦은 나이에 예수를 믿었다. 1931년 청강생으로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여 방학을 이용하여 신안의 임자면 진리로 내려가서 교회를 개척하여 보고하고 이성봉 전도사의 보증으로 입학이 허락되어 정식 학생이 되었다. 
낙도선교에 대한 비젼을 품은 그녀는 나룻배를 타고 이 섬 저 섬을 오가며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증동리와 대초리, 제원리 등 다섯 곳에 교회를 세우며 글을 가르치고, 예수를 전하였다. 그녀는 복음전도자 외에 섬마을의 어머니, 선생님, 우체부, 간호사, 짐꾼 등 궂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봉사, 헌신함으로 인해 신안 일대 10여면(面)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1950년 6.25한국전쟁 때 공산 도배(共産 徒輩)들에게 체포되어 증동리 해변에서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란 죄명으로 몽둥이로 맞아 순교하였다.
문 전도사 밑에서 신앙교육을 받은 섬마을 아이들 중에 김준곤(한국대학생선교회 설립자), 이만신(기성 총회장, 한기총 대표회장), 이성봉(기성총회 총무), 정태기(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 등이 배출되어 훗날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었다.

“예수 믿어야 산다.”      평상시 늘 하던 ‘말씀’ 중에서 
 
7월   인물
 
● 이성봉(李聖鳳, 1900.7.4.~1965.8.2.) - 성결교회가 낳은 세계적 부흥사
1900년 7월 4일에 태어난 이성봉은 소학교를 졸업하였으나 가세가 빈한하여 장사를 하다가 병이 들어 3년 투병 중에 중생을 체험하고 주의 종으로 소명을 받았다. 신학생 시절부터 어린이 부흥강사로 활동하다가 신학교 졸업 후에 교회 건축과 전도에 큰 부흥을 일으켰다. 교단으로부터 탁월한 부흥사로 인정받아 평안도, 함경도, 만주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큰 부흥을 일으켰다. 1954년 임마누엘 특공대를 조직하여 성결교 뿐만 아니라 초교파적으로 복음운동을 일으켰다. 시골 구석에 까지 들어가 ‘말로 아니면 죽음으로’ 외치며 불같은 뜨거운 사랑의 설교를 통해 교회 부흥과 함께 수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였다. 신촌성결교회를 개척하였고, 미국순회 부흥회 때에는 미국 신자들로부터 ‘제2의 무디’로 불리웠다. 성결교단 분열시 합동을 위하여 ‘통일 수염’을 기르고 480교회를 순방하며 말씀을 전하였다. 
  
“순간순간 주님과 호흡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동행하라.”         이성봉 목사 ‘좌우명’ 중에서

8월   인물
 
● 박봉진(朴鳳鎭, 1890~1943.8.15.) - 신사참배를 거부한 성결교회 순교자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한학을 공부하다가 17세에 교회에서 전도하는 청년들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은 그는 금은방 가게를 개설하고 사재를 털어 1923년에 평택성결교회를 건축하여 봉헌하였다. 그리고 금은방 사업체를 평택, 천안 등 7곳에 지점을 개설하며 큰 부(富)를 쌓게 되었다. 이후 사업이 부진한 중에 기도하다가 사업을 정리하고 43세에 신학교를 들어가 하리성결교회를 개척하였다. 졸업 후에 목사 안수를 받고 여주교회, 이천성결교회를 거쳐 1941년에 철원교회로 파송을 받았다. 1943년 5월 27일 철원경찰서에 구속되어 끝까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의 죄임을 주장하여 모진 고문을 받다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8월 10일에 만신창이 된 몸으로 가족들에게 인계되었다. 그로부터 박 목사는 5일 후 해방을 2년 앞둔 8월 15일에 순교하였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다고 믿는다”          신사참배 거부로 취조 받을 때 ‘답변’ 중에서 

9월   인물

● 찰스 카우만(Charles E. Cowman, 1868.3.13.~1924.9.24.) -동양선교회 설립자
카우만은 1894년 9월 3일 시카고에서 개최된 선교집회에 참석하여 주강사인 심프슨 박사의 선교 초청에 응답하여 부인인 레티 카우만과 함께 선교사로써 헌신을 하였다. 무디성서학원에서 만난 나까다 쥬지의 일본 선교 요청을 받고 1901년 피아노를 판 여비로 태평양을 건너와서 일본 동경에서 나까다 쥬지(中田重治)와 함께 동양선교회를 설립하였다. 동양 각지에 사중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도자 육성을 위한 동경성서학원을 세웠다. 한국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가 설립한 동경성서학원을 1905년에 입학하여 1907년에 졸업한 정빈과 김상준에 의해 창립되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마가복음 16장 15절

10월   인물
 
● 김상준(金相濬, 1881~1933.10.12.) - 성결교회 교리의 기초석, 창립자
평남 용강에서 출생한 김상준은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20세가 갓 넘은 어느 날 평양 시장에 나갔다가 노방전도를 통해 기독교로 입신하게 되었다.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상투를 자르고, 조상 제사를 폐하자 부친과 김 씨 문중으로부터 매를 맞고 멍석말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천우신조로 살아난 김상준은 일본으로 건너가 정빈과 함께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1907년 귀국하여 정빈과 함께 염곡 복음전도관을 개설하고 부교역자로 사역하다가 1912년 주임 교역자가 되었다. 1914년 성결교회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고 경성성서학원 교수가 되어 후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1917년 성결교회를 사직하고 초교파 부흥목사로 복음전도를 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 고향 용강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1920년 이후 기독교 창문사를 통해 문서선교를 하였다. 특별히 1921년에 출간한 『사중교리』를 비롯하여 『묵시록강의』와 『단이리서 강의』는 성결교 교리의 기초석을 제공하였다.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집회를 하다가 과로로 1933년 10월 12일에 소천하였다. 

‘하늘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두고 기도하면 반드시 얻게 된다.“  
 『百牧講演)』 1집(1920년) ’추수의 비(雨)를 빌라 ‘중에서

11월   인물

● 천세광(千世光, 1904.3.7.~1964.2.28.) - 민족과 교회를 사랑한 복음신앙가
본명은 천세봉으로 1921년 경성성서학원 남자기숙사 신축 기념예배에 참석하여 큰 감명을 받고 민족구원의 방편으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1923년 11월 23일 성령 체험과 함께 중생을 하게 되었고, 2년 뒤인 1925년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1926년 6.10만세운동 때 종로6가 오간수교에서 단독으로 십자가를 그려 넣은 구한국기를 흔들며 만세를 고창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투옥되었다. 조치원교회 주임교역자로 사역하는 중인 1933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경주교회, 부산교회에 이어 삼천포교회에서 목회하였고, 『영남성보』를 통해 문서선교를 하였다. 1940년 신사참배 거부로 삼천포주재소에서 7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1943년 교단 해산시 재차 검속되어 9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생활을 하였다. 1945년 사상범 예비 검속으로 수감 중에 8.15 해방을 맞아 출옥하였다. 같은 해 11월 성결교 재흥총회에서 의장으로 추대되어 교단 재건에 힘쓰다가 제 궤도에 오르게 되자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다. 목포교회를 맡으면서 도서전도대를 조직하여 호남지역 복음화를 위해 주력하였다. 그리고 1953년 십자군 전도대를 재조직하는데 참여하여 제3대 대장을 맡아 충주를 중심으로 원주, 안동, 묵호 등에 교회를 개척하며 36년 교역생활 중에 76,294명 결신자와 38개 교회를 신개척하였다.  

“지식의 교만이 기도의 겸손을 대적한다.”
            『활천』 “하나님의 사람” 중에서 

12월   인물

● 이명직(李明稙, 1890.12.2.~1973.3.30.) - 성결교회의 사부(師父)
1890년 12월 서울에서 전형적인 유교 집안에서 출생한 이명직은 정치학을 공부하러 일본 유학을 떠났으나 방황하는 중에 동경에서 구세군의 전도 강연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그 다음 날 YMCA총무 김정식을 만나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접하고 기독교로 입교하였고, 동양선교회 총리인 나까다 쥬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911년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1916년 경성성서학원 교수와 아현교회 주임 교역자가 되어 신학교육과 목회에 전념하였다. 이후 제1회 성결교회총회 총회장이 되면서 연임하고 활천 편집인, 1935년 경성성서학원 원장, 1941년 성결교회 재단 이사장이 되면서 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최고 책임자로 사역하였다. 이후 서울신학대학 초대 학장과 성결교신학교 명예교장을 맡으면서 성결교회의 사부(師父)로 칭함을 받았다.

“이전 행위를 그대로 하고 고치지 아니하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다”
『조선의 강단』 ‘회개’ 중에서

올해는 1907년 시작한 한국성결교회가 복음전도관으로 있다가 1921년 교단으로 전환한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이에 과거와 다르게 지난 114년 역사 가운데 100회기 총회를 기념하여 총회장의 정책 일환으로 추진된 2022년 교단 달력을 통하여 성결교회의 역사적 정체성이 함양되고 자랑스런 신앙적 유산이 계승되어져 말세지말 사중복음(四重福音) 전파의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는 소망스런 교단이 되기를 기도한다.
 *필자의 요청으로 인물 사진 사용을 승락한 한국성결교회문화선교회(구, 성결교회 역사와 문학연구회 백수복 목사)에 감사를 드린다.

정상운 목사 [성결대학교, 한국신학회 회장]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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