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4 (토요일)
총회/기관 지방회 화제&인물 특집 선교&신앙 목회&교육 열린광장 오피니언 교계&문화  
전체보기
특집
기획
성결교회100년사
다문화
 
 
뉴스 홈 특집 특집 기사목록
 
예수님과 상관없는 성탄절, 이대로 좋은가?
예수님과 상관없는 성탄절, 이대로 좋은가?
2022-12-27 오전 10:33:00    성결신문 기자   


성탄절은 기독교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보편적인 축제의 날로 자리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탄절은 기독교인만의 기념일에서 거의 모든 종교를 망라한 세계적인 문화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대중이 기독교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성탄절이 대중화되면서 기독교의 본질이 훼손되고 왜곡되어 본말이 전도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오늘의 성탄절 문화는 점점 성탄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실제로 성탄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성탄절의 현실을 어렵지 않게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탄의 본질이 무엇일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에서 성탄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 20:28)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밝히신 말씀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라고 말한다. 이렇게 두 군데 말씀만 살펴봐도 예수님이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오셨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성탄의 본질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성탄절이 되면 “축 성탄”이라는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너무 당연시하여 문제의식을 띠고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마도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는 관습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생일도 축하하는 마당에 예수님 탄생의 축하를 당연지사로 여긴다는 말이다. 

따라서 성대하게 축하 잔치도 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죄스럽게 생각하는 정서까지 있다. 성탄 축하를 위한 잔치를 지당하게 받아들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독교인이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찬양도 하며 기도할 때도 곧잘 읊조린다. 단순히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오셨다. 

죽기 위해 탄생하신 예수님을 축하한다는 말이 이치에 맞는 것일까?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좌천한 정도가 아니라 사형수로 오신 것인데, 축하라는 말이 적절하냐는 말이다. 사람도 영전이 아니라 좌천되면 축하한다는 말을 못 한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표현은 마땅하지 않다. 성탄에 대해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사의 표현밖에 없다. 그래서 성탄 축하가 아닌 성탄 감사로 바꿔야 한다. 따라서 성탄절 예배도 축하 예배가 아니라 감사 예배로 드려야 할 것이다.

물론 “성탄 축하 예배”라는 문구를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 성탄에 대해 감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뭐가 문제냐고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축하와 감사를 동시에 하는 것이기에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 용어가 함축하는 뜻이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식화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축하받으셔야 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이다. 죽음에서 살아나셨으니 축하드릴 일이 아닐까? 

일각에서는 성탄절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성탄의 본질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성탄절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성탄절이 태양신을 섬기는 이방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로 성탄절 지키기를 거부하는 운동이 줄곧 있었다. 

스위스의 개혁자들은 성탄절이 이방 풍습에서 유래했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관습과 결부되었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반대했다. 1550년 제네바에서 모든 비성경적인 축제를 금지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는 1560년 존 낙스가 성탄절을 지키지 못하게 했으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성탄절을 지키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 

영국의 청교도들도 성탄 축제를 반대했다. 청교도 혁명 기간 중인 1642년 영국 청교도는 12월 25일에 행해지는 예배와 축하 행사를 전면 거부하였다. 미국의 경우 영국 청교도, 장로교파, 퀘이커, 메노나이트 등이 다수 지역인 뉴잉글랜드나 펜실베니아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성탄절을 지키지 아니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성탄절 지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지금은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 전 세계적인 축제의 날이 되었다. 한국 교회 안에도 성탄절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나, 이들의 주장이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미미한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그렇지만 가만 있어도 어차피 성탄절의 참 의미를 알고 지키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갈 것이고, 갈수록 유명무실한 성탄절이 될 공산이 크다. 물론 형식적인 성탄절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형식은 더 강화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의미 없는 성탄절,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성탄절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미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성탄절의 징후는 한둘이 아니다. 성탄 축하를 말하면서도 실상은 예수님이 빠진 성탄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부분 교회가 지나칠 정도로 율법주의, 기복주의로 굳어지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복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율법주의, 기복주의가 앉아있다. 성탄절에 예수님은 계시지 않다는 말과 복음이 없다는 말이 다르지 않다. 예수님이 곧 복음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탄절이 되어도 십자가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대신 율법의 행함으로 세상에서 복을 받는다는 논리로 도배한다. 

성탄절을 잘 지켜야 복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그 방법으로 성탄절에 예물을 가지고 경배한 동방 박사들처럼 보배합을 바쳐서 예수님께 경배하라고 종용한다. 이런 현실이 바로 예수님과 상관없는 성탄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성탄 캐럴을 부르고 성탄 예물이라며 돈을 바치는 행위를 한다고 하여 성탄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 아니다. 성탄 감사 예배에 참석하지도 않고 육체의 쾌락을 탐닉하여 먹고 마시는 일로 성탄절을 보내는 것만이 예수님과 상관없는 성탄절을 보내는 게 아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고 거액의 헌금을 바치면서 예배행위를 한다고 해도 예수님과 상관없는 성탄절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왜곡할 때 예수님과 상관없는 성탄절이 된다. 따라서 예수님이 오신 목적에 부합한 성탄절을 보내야 한다. 예수님은 성탄을 축제일로 정하여 잘 지키라고 오신 게 아니다. 그랬다면 성경에 성탄일을 분명하게 언급했을 것이고, 어떻게 지켜야 할지 가르쳤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성탄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있으며, 어떻게 지키라는 명령도 없다. 이는 우리가 성탄일을 큰 기념일로 지정하여 성대하게 잘 지키는 것을 예수님이 원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한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기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한 사도 바울 서신서의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탄생일을 기념하여 지키라는 말씀이 없다는 점이다. 

다만 예수님에 대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갈 4:4)이라는 말씀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함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라는 정도로 언급했을 뿐이다. 이러한 말씀도 예수님 탄생의 본질을 말씀하신 것이지 성탄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거나 물질을 바쳐 성탄일에 예수님께 드리라는 말씀이 아니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탄생 기념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있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이 3세기에 접어들면서 행해졌다고 보는 역사가가 대부분인 것을 고려하면 적어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탄절을 지키지 아니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탄절 지키는 게 주님의 뜻이 아니라 성탄에 담긴 본질을 알아 생명의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주님의 뜻이라는 점을 알았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이 같은 예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선포하고 증거 하는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었다. 초대교회 복음 선포의 내용에서도 볼 수 있고, 교회사적으로 보아도 초기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핵심으로 생각한 점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었지 탄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본질이 훼손되고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버려 예수님과 상관없는 성탄절의 전통에서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계신 성탄 기념일이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교회는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성도들에게 정확하게 가르치고 알려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탄생하셨습니다.”라고 앵무새처럼 외치자는 말이 아니다.

성도들에게 성경에 계시 된 예수님을 보도록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하여 복음의 눈이 열리게 해야 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0)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은 구약 성경이다. 구약 성경은 예수님을 증언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구약에서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일관되게 예수님을 증언한다. 은혜의 복음을 말씀한다는 뜻이다. 모든 성도가 이렇게 성경을 보는 눈만 열려도 지금껏 보지 못한 복음이 살아있는 성탄절이 될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대로 생명을 살리는 성탄절 말이다. 이것이 예수님과 상관있는 성탄절이다. 2022년 성탄절이 예수님과 상관없는 마지막 성탄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세준 목사 [새누리교회]
기자 : 성결신문
관련기사
 
 

 
네티즌 의견
전체 0   아이디 작성일
 
의견쓰기
 
새해신앙 각오
여성들의 조용한 탈출
특집 기사목록 보기
 
  특집 주요기사
은현교회, 선교사 게스트하우스 ..
‘한국교회의 위기의 실상은 어..
‘한국교회의 위기의 실상은 어..
‘한국교회의 위기의 실상은 어..
폐암4기 -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
1.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2.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3.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가장 많이 본 뉴스
  사 설

회사소개 광고안내 이용약관 개인보호취급방침 이메일수집거부


[110-091]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29ㅣ대표전화 : 02-732-1286ㅣ 팩스 : 02-732-1285 ㅣ등록번호: 문화 다 06518
발행인: 신현파 ㅣ사장: 김원철 | 편집인: 이강춘
Copyright ⓒ 2009 SK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sk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