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2 (금요일)
총회/기관 지방회 화제&인물 특집 선교&신앙 목회&교육 열린광장 오피니언 교계&문화  
전체보기
특집
기획
성결교회100년사
다문화
 
 
뉴스 홈 특집 특집 기사목록
 
제1회 백일장대회-최우수상
엄마의 부지깽이 사랑
2023-05-15 오전 9:41:00    성결신문 기자   


엄마의 부지깽이 사랑

전예나 권사 [독일교회]

철이 없던 어린 시절 언니나 동생이랑 다투고 큰소리를 낼 때가 있었습니다. 엄마는 집안 어른들 걱정하신다며 부지깽이를 들고 뛰어 오십니다. 

다투던 우리는 후다닥 뛰쳐나갑니다. 대문 밖만 벗어나면, 어머닌 동네 우세스럽다며 더 이상 쫓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밖에 나가 까마득히 잊고 놀다가 해질 무렵에야 꾸중을 듣던 생각이 나서 살금살금 들어갑니다. 엄마는 언제 쫓아냈냐는 듯 아무런 말씀 없이 편안히 받아 주시니,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송구하고 고마웠던지 모릅니다. 언젠가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고 가도 도망가지 않고 앉아 있던 고집쟁이 막내가 미웠다”고 하셨지요. 요즘 막내여동생에게 물어보면, 동생은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 방문을 열어젖혀도 하나도 안 무서웠다고 합니다. 막내에게 엄마는 하늘이고 공기이고, 땅과 같아서 부족함 없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부지깽이는 사랑이었습니다.

농촌의 가을걷이로 더 없이 바쁜 날, 우리 집 부엌에서는 부지깽이도 날아다니고, 앞마당의 누렁이도 덩달아서 이리 저리 분주히 뛰어 다녔습니다. 농번기에 엄마 손은 손톱을 깎을 필요도 없이 닳아 없어지고 거칠어져, 가려운 등을 긁어 달라 내밀면 그 손바닥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시원할 만큼 거칠었습니다. 

그렇게 바쁜 중에 밥 한 끼를 얻어먹기 위해 오는 걸인도, 머리에 생선을 이고 오는 보따리 장사도 많았습니다. 엄마는 그들을 한 번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고개가 얼마나 아프겠냐”고 하시며 생선을 떨이로 사면서, 눈치 보지 않고 먹고 갈 수 있도록 한 켠에 밥과 반찬을 넉넉히 담아 내 주셨습니다. 

어린 우리가 싫은 내색이라도 하면 여지없이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농사가 많으니 품을 팔러 오는 일꾼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새참을 넉넉히 준비 하시고, “해가 지기 전에 좀 일찍 보내줘야 그들도 집에 가서 집안일도 하고 저녁도 지어 먹는다”고 하시며 해가 지기 전에 일찍 보내는 걸 원칙으로 삼으셨습니다. 오히려 일꾼들이 얼마 남지 않은 일이라 마무리 하고 간다고 해도 한사코 “내일 하면 된다” 하시고 집으로 보내시기로 유명했으니 우리 집에는 서로 품삯 일을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리지만 작은 부자는 근면하면 된다고 늘 가르쳐 주셨습니다. 평생을 근면성실하셨던 어머니에게 반찬은 서너 가지면 충분했습니다. 의복도 세 벌이면 깨끗이 세탁해 입을 수 있으니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릴 때 농사지은 채소를 엄마와 앉아 다듬곤 했습니다. 

마무리 할 무렵 내가 조금 더 쓸 수 있는 잎을 찾으면, 어머니는 “이제 그만하자. 남은 것은 새도 먹고 벌레도 먹게 두자”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겨진 엄마와 시골 친정집에서 며칠 지낸 적이 있습니다. 엄마에게 나는, 아이 둘 키우며 살림하는 것도 힘든데 엄마는 팔 남매에 시부모님 모시고 종손으로 많은 제사와 집안 대소사 챙기며 힘든 세월을 어찌 사셨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래도 너희들 키우고 살 때가 좋았다”는 대답을 들으며, 내 나이 삼십대 중반에 불과했으니, 그때는 엄마의 외로움을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이제 내 나이 육십이 되어 보니 어머니의 말씀 속에 얼마나 절절한 외로움이 담겨 있었는지 알 것 같아 눈물 흘려 후회합니다. 그때 어머니께 더 자주 전화 드리고 고맙다는 말 전해 드릴 걸. 엄마는 저희 전화를 받으시면 늘 씩씩하고 다정하게 “우리 예나냐. 

애기들하고 사느라 힘들지! 일하랴, 살림하랴 바쁠 텐데 전화 해줘서 고맙다”하셨습니다. “혼자 계시니 반찬도 마땅히 없을 텐데 식사는 어떻게 하고 계셔요?”라고 여쭙기라도 하면 “걱정 하지마라. 쌀 있고, 장 있고, 푸성귀 있는데 뭔 걱정이냐”하셨습니다. “나도 엄마처럼 예쁘게 늙을 거야”하면, 엄마는 “뭔 소리냐. 우리 딸은 엄마보다 훨씬 잘 살아야지“하시던 멋진 엄마셨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특별한 사랑을 주셔서 언니와 다투면 늘 제 편을 들어 주시며 “우리 예나가 가장 잘 살거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살면서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습니다. 비록 내가 생각하는, 잘사는 부자가 안 되어서 지금도 궁금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무슨 근거로 우리 예나가 가장 잘 살 거라고 말씀해 주셨는지 천국에서 만나면 꼭 여쭤보고 싶습니다.

엄마는 50대 늦은 나이에 예수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교회가 멀리 아랫마을에 있기에 새벽마다 일어나 촛불 켜고 방에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팔 남매 출가시키시고 외롭게 혼자 계시다가 83세에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의식 없이 2주 정도 누워 계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자식에게 짐 되지 않게 살다가 죽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주님께 올리던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지셨습니다. 

엄마 병실에 누워 계실 때 엄마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 드리며, “엄마 그동안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천국에서 만나요.”라고 하니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창밖은 목련꽃 꽃망울이 통통히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사월이었습니다. 엄마는 이 땅에서의 사명 잘 감당 하시고 그렇게 천국에 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소천하신 후, 동네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너희 어머니는 평생 새색시 같은 마음을 변하지 않고 사셨다, 성자 같은 마음으로 베풀고 궂은 일은 당신께서 다 품어 안고 사셨단다. 그런 사람이 없다.”

엄마가 소천하시고,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던 나는 우울증이 올 만큼 슬퍼하며, 집안에서만 지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던 엄마의 기도가 끊어졌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든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슬픔 중에 지내던 어느 날 꿈속에 엄마가 찾아 오셨습니다. 

엄마는 아주 편안하신 모습으로 “내 집이 여기다”라고 하시며 손으로 가리키십니다. 거기에는 보석 꽃이 만발한 길을 따라, 보석으로 꾸며진 집이 있었습니다. 그 꿈 이후, 나는 엄마가 그렇게 좋은 천국에 가셨는데 내 서러움에 울며 지냈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짓말처럼 눈물과 슬픔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연민에 빠져 슬퍼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천국에 계신 엄마를 꿈속에서 만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그 꿈이 주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도 이 땅의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의 기도를 쌓으며, 믿음 생활 잘하겠습니다.


기자 : 성결신문
관련기사
 
 

 
네티즌 의견
전체 0   아이디 작성일
 
의견쓰기
 
제1회 백일장대회-대상
제1회 백일장대회-우수상
특집 기사목록 보기
 
  특집 주요기사
은현교회, 선교사 게스트하우스 ..
‘한국교회의 위기의 실상은 어..
‘한국교회의 위기의 실상은 어..
‘한국교회의 위기의 실상은 어..
1.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폐암4기 -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
2.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3.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가장 많이 본 뉴스
  사 설

회사소개 광고안내 이용약관 개인보호취급방침 이메일수집거부


[110-091]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29ㅣ대표전화 : 02-732-1286ㅣ 팩스 : 02-732-1285 ㅣ등록번호: 문화 다 06518
발행인: 신현파 ㅣ사장: 강병익 | 편집인: 이강춘
Copyright ⓒ 2009 SK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sk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