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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웰 다잉법 시행을 앞두고
죽을 권리의 인정 VS 인간 존엄성 훼손
2017-10-30 오전 11:01:00    성결신문 기자   


지난 2017년 10월 23일, 웰다잉(well-dying)법이 시험적으로 허용됐다. 한국 사회는 소위 존엄사와 관련해서 ‘죽을 권리’를 인정해주는 윤리적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 논쟁이 일어났던 것은 2009년 당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김 모 할머니에게 생명연장 장치인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것에서 시작됐다. 당시 식물인간 상태에서 김 할머니 가족들은 소송을 했지만 존엄사는 가처분을 받았다. 2008년 2월 김 할머니는 폐암이 의심되어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기관 내시경을 이용한 조직검사를 받다가 폐출혈과 심호흡 정지가 일어나 식물인간이 되었다. 

김 할머니 가족은 뇌손상을 입어 회복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국내 첫 ‘연명치료 중단’ 소송을 제기하였다. 

당시 김 할머니 가족들은 서울 서부지법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여 1심과 2심 재판부로 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2009년 5월 대법원에서도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을 받았다. 결국 김 할머니는 자가 호흡으로 하다가 인공호흡기 제거한 후, 201일 만인 2010년 1월에 사망했다. 대법원에서는 “환자가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생명유지 장치인 인공호흡기 등의 도움 없이는 더 이상 생존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생명유지 장치인 인공호흡기로 인한 치료 행위는 환자의 상태를 회복하거나 개선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의학적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 의미는 “대법원이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일반적 요건 혹은 절차를 제시하고, 사전의료지시서의 요건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그럼 이제 시행되는 존엄사에 대해 살펴보자. 그리고 이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없는지도 살펴보자.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는 용어는 오늘날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을 대신해서 많이 사용된다. 안락사는 어원적으로 ‘쉬운 죽음’(easy death)을 말한다. 

안락사는 더 이상의 생존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생명을 중지시키는 행위이다. 안락사는 적극적인 안락사와 소극적인 안락사로 구분된다. 먼저 적극적인 안락사는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과정에서 행위가 개입되는 것이고, 소극적 안락사는 환자의 질병으로 인해 더 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치료 장치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들의 차이는 어떤 행위를 통해 생명을 중단시키는 것과 생명 유지 장치인 인공호흡기와 같은 장치를 통해 더 이상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을 지어 보면 존엄사는 적극적 안락사라기보다는 소극적 안락사에 가깝다. 

존엄사는 병원에서 최선을 다하여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없어 연명치료를 중단해 환자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현재 자발적 안락사는 환자의 직접적인 동의를 얻고 시행된다. 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여건에 따라 존엄사를 인정하는 국가로 미국과 호주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2018년 존엄사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시범적 시행이 시작됐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존엄사가 낯설다. 더군다나 아직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존엄사에서 가장 논의되는 윤리적 논쟁은 ‘죽을 권리의 인정’과 ‘생명의 인위적 단축’에 관한 것이다. 

먼저 ‘죽을 권리의 인정’을 살펴보자. 인간은 스스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 ‘자기 결정권’을 가진다. 자신이 고통스러움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 때, 편안하게 죽고 싶은 권리, 즉 자기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죽을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음으로 환자의 행복 추구권이다. 환자가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고 단지 생명을 연명하는 치료를 할 경우, 지나치게 환자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것은 환자의 행복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연명치료 중단은 환자에게 더 이상 고통에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존엄사 찬성입장과는 달리 존엄사를 시행하는 데 윤리적 한계도 만만치 않다. 

그것은 첫째로 존엄사를 시행할 때 인간 생명의 경시풍조 사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인간 생명이 다른 어떤 것을 위해 대체되거나 또는 생명을 자기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단축하게 될 경우, 생명을 너무 쉽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생명은 귀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 생명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죽을 권리’를 인정하게 될 경우, 인간 생명은 ‘쉽게 죽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퍼지게 되고, 결국 이런 사고방식들은 인간 생명의 경시 풍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인간 생명이 다른 어떤 것의 ‘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인간 생명은 어떤 가치보다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 칸트는 “인간 생명은 결코 수단으로 간주될 수 없고, 반드시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인간 생명은 다른 어떤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심지어 사람의 수단으로서도 취급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섣부른 존엄사의 시행은 자칫 인간 존엄성 훼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인간 생명은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생명을 단축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존엄사를 앞두고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로 교회는 ‘하나님 주권 사상’을 가르쳐야 한다. 인간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의 주관은 인간 스스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께 있다. 하지만 웰다잉법에서 시행되는 존엄사는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점에서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할 수 있어 윤리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죽음이란 실존은 태어난 인간에게 모두 다가오는 본질적인 사건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숙명이다. 

인간은 과거나 현재나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죽음의 실존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죽음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는 것에 인간은 두려움을 느꼈다. 삶과 죽음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가르치고 고백하는 신앙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회와 신학자들은 생명에 관한 신학적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인간 생명은 다른 존재와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이다.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 삶은 단순한 본능적인 삶을 넘어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하나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체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교회는 생명의 주권인 하나님의 구속사에 속한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단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로 죽음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가족들은 임종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령 병원이나 양로원 또는 호스피스에서 연명치료 환자를 돌볼 때 많은 병원비가 들어간다. 이에 무거운 부담과 병원비로 인해 가족들이 힘들고 또 가족의 힘든 모습을 보면서 환자 스스로가 죽을 권리를 선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에 사회는 호스피스의 환자를 위해 의료비 지원 및 사회 공동체의 책임이 절실해 보인다. 사회에서 환자에게 치료비를 부담하고 가족들에게 환자를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면, 연명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스스로 죽을 권리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셋째로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 회복이 절실하다. 인간 생명은 전통과 종교와 문화를 떠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간 생명의 가치는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 이에 인간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모든 인류의 공동 목표이다. 이런 점에서 존엄사법이 자칫 인간 생명 경시 사회를 만들어갈 경우,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는 존엄사법에 나타난 죽을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생명의 소중함을 잃어가게 된다. 

사회가 연명치료환자의 가족을 돌보아주고 그들이 필요한 부분을 공동체가 채워주게 된다면, 연명치료 환자를 지키는 가족들은 마음의 안정을 가지고 환자를 돌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환자 또한 자기로 인해 가족들이 고통 받는 것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죽을 권리를 선택하기 보다는 남아있는 가족들과 자연스러운 죽음을 기다리게 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생물학적 죽음 이상의 죽음의 가치가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죽음은 단지 현재의 삶을 끝내는 생물학적 죽음 그 이상의 실존적 가치를 가진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저 하늘나라의 소망과 연결된다. 죽음을 앞둔 그리스도인들은 저 천국에 대한 소망을 믿고, 다시 만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기다린다. 

이처럼 죽음은 현재 그리고 저 천국을 지향하는 내세관과 연결되어 있는 다리이다. 이 순간 인위적인 죽음의 선택이 아닌 천국을 소망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가족 그리고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다시 만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성서적일 것이다.

<특별기획팀>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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