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6 (화요일)
총회/기관 지방회 화제&인물 특집 선교&신앙 목회&교육 열린광장 오피니언 교계&문화  
전체보기
특집
기획
다문화
 
 
뉴스 홈 특집 기획 기사목록
 
군종 제도의 시작, 6.25전쟁 중 싹터
민군 합동 민족복음화의 기폭제 역활
2018-09-19 오후 6:46:00    성결신문 기자   


    


한국교회의 군선교는 위기의 순간 태동했다. 6.25전쟁. 동족을 죽여야 이기는 전투.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군선교의 중심이라 할수 있는 군종제도가 시작됐다.

군종제도의 탄생은 한 무명의 카투사 병사를 통해 시작됐다. 미군 제30사단 10공병대대에서 근무하던 한 사병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성직자가 군에 들어와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의 가슴에 신앙의 철판으로 무장시키고 기도로써 죽음의 두려움을 없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이 한 통의 편지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본격적인 군종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와 함께 민간 각 종단이 성직자들의 종군 필요성을 거듭 요청했고 1950년 12월 21일.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은 “종군 목사가 각 군대에 들어가서 일하도록 하라”는 지시(국방신 제29호)를 내렸다. 한국교회의 군선교의 모태가 되는 대한민국 군종제도의 신호탄이었다.

▲ 전군신자화, 민족복음화의 기틀이 되다
우리 국군은 초기부터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신앙’에 초점을 뒀다. 신앙을 전력화함으로써 사생관을 확립하고 밝은 병영문화를 만들어 강군을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70년대 불처럼 타오른 전군신자화 운동은 큰 의미를 갖는다. 여전히 그 강군육성의 의지가 군선교를 통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강군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한국교회를 부흥케하는 촉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한신 장군에 의해 시작된 전군신자화운동을 시작으로 군종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어졌다. 이 무렵 군인교회 예배가 군인교회 중심에서 내무반 중심으로 이어졌고 일요일 개념에서 탈피해 요일 개념 없이 예배가 전개됐다. 대다수의 전방 군 내무반에서는 잠들기 전 반드시 예배를 드리고 취침하기도 했다는 증언도 이어진다.

전군신자화운동의 결과 1970년 78,176명이 었던 군내 기독교 신자수는 1987년 188,439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신자수가 증폭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군내에서는 진중세례운동이 점화됐다. 1971년 9월, 21사단 66연대에서 당시 연대장이던 유정목 대령이 ‘전군신자화운동은 지휘관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153명의 장병들과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진중세례운동이 불붙었고 이는 전군신자화운동으로 이어지며 한국교회 부흥의 마중물이 되었다.
기자 : 성결신문
관련기사
 
 

 
네티즌 의견
전체 0   아이디 작성일
 
의견쓰기
 
예성 역사기록에 대한 교회사적 검토와 제언
복음의 황금어장 軍선교, 관심과 지지 필요
기획 기사목록 보기
 
  특집 주요기사
은현교회, 선교사 게스트하우스 ..
폐암4기 -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
1.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3.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2.평생교육원 지상강의-회복과 ..
고난의 현장 - 목신교회
부활은 OOO이다
제1회 고양지방회 정기지방회 개..
 
 
가장 많이 본 뉴스
  사 설
회사소개 광고안내 이용약관 개인보호취급방침 이메일수집거부


[110-091]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29ㅣ대표전화 : 02-732-1286ㅣ 팩스 : 02-732-1285 ㅣ등록번호: 문화 다 06518
발행인: 윤기순 ㅣ사장: 이철구ㅣ편집인: 이강춘
Copyright ⓒ 2009 SK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sk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