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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죽음을 어떻게 가르칠까?
교회는 성도들이 죽음을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가르쳐야
2019-10-27 오후 2:47:00    성결신문 기자   


한동안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유행했다. 곧이어 웰다잉(well-dying)이란 말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고,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 와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성도들 가운데도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것을 본다. 

최근에 와서는 자살 문제도 심각하고, 안락사와 존엄사의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 아울러 많은 가정에서 고민하는 생명 연장을 위한 연명 치료의 문제도 가르쳐 주어야 성도들이 혼동이 없을 것이다. 이런 주제들을 종합하여 그동안 교회 안팎에서 가르쳤던 것을 중심으로 교회 안에서 죽음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나누려 한다.

1. 죽음을 가르치는 이유
 죽음의 문제는 인생 누구나 피할 수 없다. 미리 죽음을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준비한다면 인생에 매우 유익하다. 죽음은 모든 이들이 두려워한다. 죽음 문제 전문가인 알폰스 데켄(Alfons Deeken) 신부는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아픔과 공포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죽어가는 순간의 고통,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두려움,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 죽어가는 순간의 추한 모습에 대한 걱정, 사후 세계에 대한 공포 등이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가르치게 되면 이런 공포나 두려움을 한결 완화해 준다. 교회는 성도들이 죽음을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죽음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장례식장에 국한하지 말고 자주 솔직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배운 사람들은 죽음 문제에 닥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음을 배운 사람들은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고 편하게 잠들 수 있다. 세상의 어느 누가 죽음을 강의해도, 무슨 유명한 철학자가 죽음 문제를 풀어준다 해도 진정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성경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죽음을 배운다. 솔로몬 역시 죽음 문제를 잘 이해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2). 
죽음을 가르치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인생을 배우게 한다. 죽음을 배우면 인생을 새롭게 발견한다. 둘째로 나에게 올 죽음을 예비하게 한다. 떠날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셋째로 영적인 성장의 계기가 된다. 죽음을 배우면 이 땅에서 남은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넷째로는 우리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2. 생명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가르치려면 생명이 무엇인가? 생명의 정의를 논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쳐야 한다. 철학에서는 생명을 복잡한 조직으로 본다. 진화론자들은 생명을 역사의 결과라고 가르친다.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저명한 미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와 그녀의 아들 도리온 세이건(Dorion Sagan)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생명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생명을 숨 쉬는 것, 살아있는 생명체로 본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만드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유지한다. 생명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이 마음대로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따라서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안락사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은 아무리 형편과 처지가 불쌍하고 이해가 된다고 해도 성경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3. 왜 사람은 죽는가? 
예로부터 죽음의 주제는 철학자들과 많은 종교의 가르침으로 다양하게 전해져 왔다. 그런 가르침도 참고할 수 있으나 교회에서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훈을 전해야 한다. 성경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죽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기독교의 성경만큼 정확하게 죽음을 가르쳐 주는 종교의 경전은 없는 듯싶다. 먼저는 죄의 결과라고 가르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이 한 구절은 분명하게 죽음의 이유를 설명한다. 성경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므로 죽게 되었다. 때로는 의인들도 죽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며, 성도에게 안식을 주시려는 섭리이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많은 이들이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성도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다. 

4. 죽음을 예비하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리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지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앞에도 죽음이 있을 것을 안다. 그러나 신앙이 없다면 죽음은 두렵고 공포를 주는 것이다. 내세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공포가 아니라 해방의 날이며, 주를 직접 뵙는 영광의 날인 것을 안다. 그래서 성도들은 죽음을 항상 예비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기적이어서 성경을 자기가 유리한 대로 해석한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날 회개한 강도가 낙원에 들어간 것을 생각하며 온갖 죄를 지어도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생명의 존귀함과 부활의 영광을 아는 이들은 정신이 맑고 건강할 때 회개할 것을 이야기한다. 유명한 신학자인 찰스 하지가 말했다. “죽어가는 순간 하는 일은 죽는 것밖에 없다.” 회개할 시간이 없을지 모른다. 미리 순간순간 회개하고 오늘 할 일을 감당해야 한다. 첫째, 죽음을 미리 묵상함이 좋다. 

둘째, 자녀들에게 미리 죽음을 준비시켜야 한다. 유언도 남기고 죽음 이후의 문제도 정리해 둔다. 셋째, 다윗이 말한 것처럼 생명과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임을 알고(삼상 20:3). 항상 죽음을 기억한다. 넷째, 죽음을 당당하게 맞을 수 있는지 점검해 둔다. 나는 믿음이 있는가? 당장 죽어도 천국 가는가? 오늘 회개했는가? 

5. 임종 환자의 권리
지금 많은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연명장치 지속 여부이다. 환자가 의식을 잃거나 전신 상태가 악화되어 임종이 임박했다고 생각할 때 연명장치의 적용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무조건 연명장치를 적용해야 한다는 데는 여지가 없다. 그러나 희생 가능성이 없고, 연명 가능성도 길지 못한 환자의 경우에는 의료진과 상의하여 결정해야 한다. 

법적으로 살아있다고 해도 의식을 잃은 채 수개월을 보낸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의미 있는 생존의 연장’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고통 받는 기간의 연장’일 뿐이다. 이런 경우는 환자나 보호자가 어렵지만 결정해야 한다. 다만,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나 장기간 연명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연명 치료의 중단은 ‘안락사’논쟁 가능성이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의료진도, 가족들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그런 상황을 대비해 사전의료 지시를 내리는 것이 좋다. 단지 가족이 돌볼 형편이 못되거나, 경제적인 이유에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 없다. 

성도들은 가족 환자의 안락사나 계속 병원을 옮겨가면서 치료를 연장하는 의료집착 행위는 거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환자의 권리를 고려하여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중단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으면서 편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는 ‘존엄사’를 택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전의사결정서>를 작성해 놓아야 한다.    

6. 안락사를 반대한다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는 매일 고통의 연속이다. 회생할 수 없다고 판정을 받는 순간부터 가족들은 고민하게 된다. 극심한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안락사가 맞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죽을 권리를 허용하게 되면 때로 상황에 따라서는 자발적이 아니라 주변의 강요로 죽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결정이 온전히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귀찮은 환자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것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인생들은 그 육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거룩하고 정결하게 보존했다가 부활 후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해야 한다. 성도들은 안락사를 찬성할 수 없고 허용해서는 안 된다. 

죽음교육에 대한 추가 자료를 원하는 분들은 
필자에게 연락(commission@naver.com)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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