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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그 여정의 깊이와 의미
사순절, 그 여정의 깊이와 의미
2020-03-26 오전 11:56:00    성결신문 기자   


차종관 목사 [세움교회]

들어가는 말
기독교는 과거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신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역사적 신앙전승에 의존하므로 결정된 신앙 체계를 하나님과 삶과의 관계를 통해 구현한다. 성공회대학의 정철범 교수는 “교회력이라 하면 기독교 진리의 전체 모습, 성경과 역사적인 교회와 인간의 경험 속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계시, 위대한 행위를 연례적으로 드리는 예배에 나타내 보이는 교회 절기와 교회 축일을 교회력이라 할 수 있다”고 정의하였다. 사순절은 교회력(church calendar)에 따른 교회의 전통적인 전례로써,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이후에 오는 교회 절기를 일컫는 용어다. 사순절은 엠마오 도상에서 제자들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듯, 부활절을 목적지로 정하고 떠나는 영적인 여정(a spiritual journey)이라고 할 수 있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로,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을 말한다. 이날은 교회가 예배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한데서 유래하였다. 재의 수요일에는 이전 해의 주님의 수난 주일에 축복했던 종려나무나 다른 나뭇가지를 한 곳에 모아 놓고 불을 태워 만든 재를 목사가 축복한 후에 성도들의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바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이것은 자신의 죄와 실수를 뉘우치고 영원한 삶을 구하라는 장엄한 외침이다. 이 세상의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할지라도 불에 타버리면 재 밖에 남지 않는다. 
따라서 재(Ash)는 죽음을 상징한다(욥 2:8). 재를 머리에 얹거나,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그리는 것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타고 남은 재를 보면서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사순절(四旬節, Lent)

사순절이란, 영어의 ‘Lent’, 또는 독일어의 ‘Lenz’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말은 모두 ‘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의 사순절(四旬節)은 희랍어 ‘테살코스테’라는 말을 번역하여 사용한데서 유래했다. 이는 부활주일까지, 주일을 뺀 40일 동안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간이다. 특히 사순절의 성례 집례자는 창세기 3장 19절을 읽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사순절은 성경에는 없는 절기이다. 하지만 사순절적 여정(the path of Lent)은 예수님을 포함하여 성경의 기자들을 통해 그 관련성을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것(마 4:1~11), 40일간 시내산에서 모세가 금식한 것(출 34:28), 이스라엘이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했던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까지의 기간인 40일을 따라 지킨다. 성경에서 40일이라는 숫자와 햇수는 모두 고난과 회복(갱신)의 상징적인 기간과 일치한다. 
마태복음 9장 15절에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 16절부터 18절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금식할 때 바리새인들과 같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진술은 신자의 금식이 어떤 종교 행위적 조건이 아닌, 신자의 신앙생활에서 필수적인 무엇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순절이 비록 성경에 명시된 전례는 아니라 할지라도, 성경은 이미 신앙의 사순절적 실천 요소들을 담고 있다. 기도, 금식, 구제 등은 실로 성경적이며 동시에 그리스도 중심적 신앙행위다(마 6:5-24).

역사적 유래

사순절은 기원후 4세기에 처음 제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기원후 325년 니케아 회의(Council of Nicaea) 이후 교회가 지키는 전례가 되었다. 처음에는 부활절 전 금식이 보편적으로 인정된 교회 제도로 등장했다. 이후 5세기까지 이와 같은 전통에 대한 교회적 적용에서 다양성을 나타냈다.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407),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296-373) 등은 교회 예식으로 제정되기 이전부터 이와 유사한 신앙행위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순절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색은 구원받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고 금식과 기도, 예배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감사하는 절기로써 기억했다는 점이다. 현대에 와서 복잡하고 바쁜 일상을 사는 신자들은 부득불 세속의 삶을 경험해야 했고, 그로 말미암아 경건의 깊이가 다소 훼손되고 있다. 따라서 한 해의 한 번, 사십일 동안 교회가 특별한 신앙 절기를 지키는 것은 신자들의 영성을 회복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여 지상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되새기는 기회로 삼을 때 특별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신앙적 의미- ‘오래된 미래’

사순절은 기독교 신앙의 ‘오래된 미래(the ancient future)’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세계와 교감할 수 있는 정서적 관계로 회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시공간적 과거인 초대교회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그 오래된 과거와의 영적 생명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참여를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능해진다. 우리는 지금도 과거라는 우물물에서 물을 길어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사순절은 초기교회라는 오래된 세계와 교감할 수 있는 정서적, 영적 관계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사순절은 교회의 기능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순절이 부활주일을 향한 영적인 여정이라는 것은 곧 교회의 존재론적 역할을 필요로 한다는 신학적 이해 때문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매일의 일상에 매몰된 나머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쏟아 부어주신 그 은혜를 통째로 잊고 살기도 한다. 나날의 관심사에 푹 빠진 우리를 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교회다. 이 망각, 이 추락, 이 죄악 때문에 우리의 생명은 새 것에서 다시 옛 것으로, 보잘 것 없는 것, 그리고 어둠에 갇히게 되므로 의미 상실을 경험하곤 한다.

나가는 말

전례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COVID 19) 사태가 우리 사회에 높은 벽을 다시 만들고 있다.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을 완전히 차단해야만 가장 안전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교회 안과 밖에서는 ‘자가격리(Self-Quarantine, Self-Isolation)’라는 말이 실시간 검색어 최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고수해 온 정적이며 과학적인 세계관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징표다. 사순절은 경건한 신앙의 퇴락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다른 원칙, 다른 전통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절충적 측면에서의 신학적 해석이다. 사순절은 초기교회라는 원형을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사순절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이다. 

<사순절 묵상 자료>

첫째 주간, 재(ash)를 묵상하다.(창 3:19-10, 17-19)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말씀은 강력하다. 이 말이 히브리어 성경의 의미로는 ‘아담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는 뜻이 된다. 여기 사용된 ‘아파르’와 ‘아다마’가 곧 흙, 먼지, 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재의 수요일에 비록 재를 머리에 묻히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죄인이며 먼지와 같은 재로서의 존재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원적인 죄인이라는 것으로부터의 회개이다. 회개는 곧 회복이다. 

둘째 주간, 죄를 묵상하다.(약 1:14-15)
복음은 회복력이 강하다. 복음은 먼지 같은 우리를 독생자를 통하여(요 3:16) 다시 살린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더 큰 비극은 나의 죄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모르는 것에 있다. 그 죄의 깊이와 무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사 53:6). 그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살 수 있었다(엡 2:1).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나의 죄를 먼저 슬퍼해야 한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부터 돌아봐야 한다. 

셋째 주간, 케노시스(비우심, 낮추심, 죽으심)(빌 2:5-8)
예수님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NIV)’까지 낮추셨다. 그것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뜻이자, 전능한 존재가 실존적 존재가 된 것이다. 그분은 배고픔을 위하여, 경쟁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완전하게 자신을 비웠던 ‘아무것도 아닌’것은 곧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 지금 나를 붙들고 있는 여러 가지 욕망들을 비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넷째 주간,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마디(눅 23:23=43)
죄는 하나님의 원수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막 10:45). 가상칠언의 마지막 말씀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후의 결정적인 사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생했다.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마 27:51). 주님께서 생명의 길이 되신 것이다.

다섯째 주간, 묵상하라, 기도하라(막 11:11-18)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이다. 고난의 주간을 예비하는 한 주로써, 사순절의 영적 리듬을 정돈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신앙을 성찰한다. 잎만 무성한 종교인이 아닌, 구체적인 삶에서 예수님과 연합된 삶의 여부를 성령을 의지하며 관찰한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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