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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에 대하여
부활절에 대하여
2020-04-11 오후 3:20:00    성결신문 기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 인류의 지형적 지평이 넓어졌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 인생의 지평은 영원으로 확장되었다. 하루하루 죽음을 향하던 인생이 영원한 생명을 향해 걷는 전혀 다른 삶이 된 것이다. 

부활의 능력은 모든 믿는 이들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시간개념을 바꾸어 버렸다. 그들이 더 이상 안식일에 예배드리지 않고 주일에 예배드리게 된 것도 예수님의 부활 때문이다. 고대의 유월절은 이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절로 새롭게 완성되었다. 

누가는 9장 31절에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며 ‘별세하다’를 엑소돈 아우투(εξοδον αυτου)로 표기했다. 즉 주님의 십자가가 엑소더스, 죽음으로 이를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세계로 이끄는 또 하나의 출애굽인 것을 강조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사용한 호칭 ‘주’(Lord, 아도나이)가 예수를 향해 사용되면서 구약의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예수의 모습에서 발견한 유대인들이 나타났다.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임당한 예수를 ‘주’ 예수라 찬양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유대인 예배공동체의 시작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 예배공동체의 원형이다. 예수를 ‘주’로 부른 이 공동체는 전통적 유대공동체로부터 축출되고 핍박받기 시작하면서 전통 유대교와 구별되는 그들만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부활을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로 경험하고 경배하는 이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부활이 없었다면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어쩌면 예수님의 죽음도 그 의미가 퇴색되었을지 모른다. 제자들은 그저 갈릴리의 어부로 살아갔을 거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가 우리 죄를 지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가 부활하셨기에 그의 죽음도 의미를 찾고 죽음과 생명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이 가지게 되셨다. 부활하신 그가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의 의미와 사명을 가르쳐 주셨기에 그 복음이 온 세상과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부활절 날짜

초기 기독교에서 유대교의 유월절과 기독교의 부활절은 다소 다양하게 통용되다가 점차 동일한 절기로 인식되었지만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최소한 두 가지 견해가 공존했다. 하나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 전통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주일을 중시하는 견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한 주의 첫째 날(주일)에 일어난 것에 초점을 맞추어 유대인의 유월절 이후 첫 주일에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 전통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유월절을 중시하는 견해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에 따르면 예수께서 죽으신 날은 ‘니산월 14일’이다. 때문에 부활절은 이로부터 3일 후인 ‘니산월 16일’이 된다. 

177년경 로마의 빅토르(Victor)가 부활절 관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아시아 교회를 정죄하자 리옹의 이레니우스(Irenaeus)가 중재하러 로마를 방문한 사건이 바로 이런 전통과 관습의 차이가 가져온 갈등에 대한 한 단면이다. 

이 부활절 시기 문제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의제로 상정될 정도였고 양쪽의 입장을 절충 결국 부활주일은 봄의 첫날(춘분) 후에 오는 만월 후 첫 주일 또는 만월이 주일인 경우 그 다음 주일로 한다고 결정했다. 

오늘도 부활주일은 이렇게 계산하며 해마다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에 온다. 하지만 니케아 결정 이후에도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의 부활절 계산방식 차이로 서로 다른 날짜에 부활절을 지내기도 했다. 

초대교회사에서 나타났던 부활절 날짜 논쟁이 한국교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연 초에 발행되는 달력 때문에 혼동이 없는 지금과 달리 포교초기에는 날짜 계산이 익숙지 않았고 1901년 「신학월보」에는 양력 9월 6일 첫째 주일이 부활절이라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  
 
부활절은 하루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부활절은 하루라고 생각한다. 실제 목회현장에서 길게는 사순절 40일, 짧게는 고난주간 7일 특별새벽기도회를 드리고 믿음과 정성과 모든 에너지가 총동원된 부활절행사(?)가 끝나면 사역자는 물론이고 많은 성도가 길고 길었던 고난의 사순절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부활절은 하루가 아니다. 부활 절기는 부활절 이후 50일간 즉 성령강림절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부활이후 1주부터 7주까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승천하시기까지,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실 때까지 교회는 부활을 기억하고 살았다.  

초대교인들은 어렵게 정한 그 한 날만 아니라, 성령강림절까지 50일도 아닌 매주일 주님의 부활을 기념했고 그들에게 주일은 부활신앙을 입증하는 날이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에도 주일만큼은 사순절에 포함시키지 않고 기쁨의 부활절로 지켰다.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지켜야 한다. 

부활절 설교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하면서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는 설교자는 보통 다음의 고민에 빠진다. 첫째는 본문선택의 어려움이고 둘째는 신선한 메시지 선포의 어려움이며 셋째는 충분한 설교시간 확보의 어려움이다. 대부분 부활주일에 성례식이 있고 칸타타나 특별행사로 설교시간이 제한받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문제는 개 교회 형편에 맡기고 앞의 두 문제를 다루되 두 번째를 집중해 제안하겠다. 

먼저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나 구약의 메시아 유비가 나온 본문(마 28:8-10,16-20; 막 16:9-11,12-13,14-18; 눅 24:13-35,36-43,44-49; 요 11:17-27, 20:19-23,24-29, 21:1-22; 행 1:1-8; 고전 15; 벧전 1:3-12; 계1:4-7; 사 25:6-9; 습 3:14-20 등)을 선택한다. 설교자라면 익숙한 본문이기에 더 설명하지 않겠다.  

신선한 메시지 선포를 위한 제안은 내용과 형식을 구분했다. 내용으로는 첫째, 부활절 설교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역사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대상에 따라, 즉 새 신자나 학생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부활하셨음을 매년 논증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부활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한 편의 설교에 담아 전하는 종합선물세트 설교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시리즈로 하나의 주제씩 연속으로 전하는 게 낫다. 

셋째, 감격과 감사의 날이기에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날 아침 제자들 누구도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실을 설교할 수도 있다. 부활은 감정이나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고 그 믿음에 따라 살기로 작정하는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선한 메시지 선포를 위한 형식으로는 첫째, 주제 및 인물설교로 교육기관에서 쉽고 익숙하게 사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정했다면 사순절 기간에는 공생애 기간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부활절 이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다룰 수 있다: 마리아(사랑), 여인들(순종), 엠마오의 두 제자(소망), 베드로(회복) 등. 무어(Moore)가 쓴 『예수님의 부활 후 40일 간의 행적』은 추천할 만한 참고도서다. 

둘째, 시리즈설교로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가 대표적이다. 그 기간 주님의 고난에 대해 묵상하도록 연속적으로 설교하듯 부활절 한 주만 부활에 대해 묵상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부활의 의미(신학적, 실존적, 과학적)를 다루거나 고린도전서 15장을 연속 강해할 수 있다. 또는 성령강림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성도)의 영적 성숙이나 성결에 초점을 맞춘 연속설교를 진행할 수도 있다. 

셋째, 본문중심설교로 예수님의 생애, 사역, 가르침, 죽음, 부활, 승천을 다루는 복음서는 공통된 관점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각의 강조점이 존재하기에 동일한 사건에 대한 신선하고 입체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넷째, 설교유형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부활에 담긴 복음을 선포하는 전통적인 선포 형, 그 복음을 부활의 목격자처럼 생동감 있게 증언하거나 고백하고 회중도 고백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1인칭 내러티브 형 또는 고백 형, 부활 그 날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기대하고 그려보게 하는, 마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설교 ‘내게는 꿈이 있다’ 같은 전망 형, 믿음의 고백인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청소년이나 새 신자에게 유익한 변증 형 등이 있다. 변증 형 설교와 관련해서는 필립 얀시의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나 폴 비슬리 머레이의 『부활』을 참고도서로 추천한다.

부활절 대망

부활절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행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과 현재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부활절 예배는 이미 성취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기억하고 재현함으로 하나님의 과거 사건에서 우리를 위해 주신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 

고난,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기억과 재현을 통해 드러나는 예배사건은 과거의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겟세마네동산, 골고다언덕, 빈 무덤, 그리고 부활현장에 세운다. 부활절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무엇인가 하는 것이라는 우상의 위험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시는 은총을 대망하게 한다.

초기 한국기독교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부활절에 조선 땅을 밟은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 사건일 것이다. “우리는 부활주일에 여기 왔습니다. 

이 날에 죽음의 철창을 부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사슬을 끊으시고 그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는 빛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암울했던 당시 조선만 아니라 지금 이 땅은 그 어느 때보다 부활생명의 빛과 자유가 필요하다.

오현철 목사 [성결대 설교학 교수]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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