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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배경(2)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배경(2)
2020-07-23 오후 10:45:00    성결신문 기자   


I. 요한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19세기 성결운동

가. 요한 웨슬리(John Wesley)의 부흥운동
이러한 혼란을 종식하기 위해, 웨슬리는 올더스게잇 체험이 있은 지 20여일 후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러 독일로 향했다. 그는 독일에서 마리앤본(Marienbon), 헤른후트(Herrnhut) 등 모라비안 교도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마을을 방문하여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마음속에 남아있던 불안과 의심을 정복하고, 앞으로의 독자적인 신앙 노선과 선교 방향을 분명히 설정하며 복음전파의 선두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웨슬리는 자신이 확립하게 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그가 묵고 있던 후튼(James Hutton)의 가정에서 기도와 성경공부, 회원들 간의 신앙적 교제를 위한 작은 모임을 시작하였다. 후에 패터래인(Fetter Lane) 신도회로 불리워지게 되는 이 모임에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739년 1월 1일 철야예배에서 웨슬리와 찰스(Charles),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를 포함한 70여 명의 형제들이 모인 가운데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나타났다. 이후 웨슬리의 설교에는 능력이 나타나서 그가 설교할 때에 사람들이 회개하며 성령 받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웨슬리의 사역은 브리스톨(Bristol)로 확장되었다. 웨슬리보다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부흥사역을 하던 휫필드는 부흥운동을 통하여 얻게 된 새신자들을 조직하고 육성하는 일을 위해 신성클럽의 회원으로서 각별히 친한 사이였던 웨슬리에게 브리스톨로 와서 신도회를 인도해 주기를 요청하게 되었다. 처음에 웨슬리는 휫필드가 교회 밖에서 전도활동을 한다는 점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나, 야외집회에 실제로 참여하면서 예수님의 산상설교와 같이 수많은 군중에게 설교하기 위해서는 야외집회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1739년 브리스톨에 도착하여 신자들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한편, 영국 국교회의 압력과 배척에 맞서 야외집회를 더욱 힘차게 추진하며 본격적인 노방 설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웨슬리의 능력있는 사역에 힘입어 브리스톨에서 짧은 기간 동안 거대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점차 확대되어 새로운 신도회를 조직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러한 신도회는 1739년 5월에 그들 자신의 집회 장소를 위해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지음으로서 최초의 신도회 회관이 브리스톨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1744년 6월 25일부터 5일 동안 최초의 신도회 대회를 개최함으로서 조직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웨슬리가 ‘전세계는 나의 교구’를 외치며 거리로 나가 대중에게 설교하기 시작한 이래 그는 이러한 노방설교를 하루에 4-5차례씩, 평생 4만 2천 회나 하였다. 

또한 1747년에는 아일랜드, 1751년에는 스코틀랜드를 각각 방문하여 설교하였고, 1760년에는 북미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이러한 선교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매년 약 12,800㎞, 평생 약 40만㎞의 거리를 여행하였다. 이러한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과거의 죄악된 생활에서 탈출하여 커다란 회심을 일으키는 영적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처럼 놀라운 부흥사역을 가능케 하였던 웨슬리 신학의 중심은 온전한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교리를 강조하는 성결운동에 있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견지하면서 어느 한쪽의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려 하여, ‘성화’라는 중세의 전통과 ‘신앙’이라는 종교개혁의 전통으로 균형을 이룬 종합적인 신학적 토대 위에 서 있기를 원했다. 

웨슬리는 초대 교회 교부들 중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와 사이루스(Ephraem Syrus), 클레멘트(Clement), 마카리우스(Macarius) 등의 문헌연구와 그 밖의 프란시스(Francis),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 Kempis) 같은 카톨릭 신비주의 전통들을 통하여 성서의 중요한 주제가 성화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동안 성화의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충분히 취급하지도 못하고, 또한 강조하지도 못하여 간과된 교리였는데, 이를 웨슬리가 재발견하여 강조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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