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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배경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배경
2020-09-14 오전 9:59:00    성결신문 기자   


2. 19세기 북미성결운동
 1) 19세기 성결부흥운동 -②
이후의 성결운동은 뉴욕시의 한 감리교 평신도들의 모임에서 점화되었다. 사라 랭크포드(Sarah Warrall Lankford)가 1835년 성결의 경험을 한 이후 자신의 집 응접실을 제공하여 시작한 ‘여성들을 위한 감리교 기도모임(Methodist prayer meetings for women)’은 훗날 ‘성결의 촉진을 위한 화요모임’이라는 연합집회로 발전하여 온전한 성화의 교리와 체험을 전파하는 성결운동의 본산지가 되었다. 

이 모임을 대중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사라 랭크포드의 자매인 푀베 파머(Phoebe Palmer)였다. 랭크포드는 파머에게 자신이 시작한 기도 모임의 지도자를 제안하였고, 파머는 자신의 성화에 대한 경험과 가르침을 토대로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그녀가 가진 성화의 체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회심의 확신을 가져다주었고, 화요모임이 성장됨에 따라 초기 기독교 성자들에게 나타난 완전을 성취하는 방법을 듣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1839년에 이르러 이 모임은 남성과 여성, 다른 교단의 신자들에게까지 개방되었으며 모임의 참석자 중에는 교수, 평신도, 설교자 및 여러 교파의 주교와 목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파머는 이 모임을 통해 미국 성결부흥운동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 그녀가 발행한 좥성결의 안내좦(Guide to Holiness) 잡지의 정기 독자가 1873년 4만 명을 육박할 정도였다.  

파머는 어린 시절 자매인 랭크포드 부인과 함께 감리교에서 자라났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그녀가 웨슬리의 신학적 영향을 받았으며, 웨슬리안의 전통과 신앙적 영향권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웨슬리의 성결론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만의 신학으로 발전시켜나갔다. 일반적으로 제단신학(Altar Theology)이라 불리는 파머의 성결론은 성화의 경험과 성서적 이해를 바탕으로 성결을 ‘제단 앞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라는 성경적 은유로 해석함으로서 “제단(Altar)” 혹은 “제단신학”이라는 용어를 발전시킨 것에서 비롯되었다. 

파머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제단이며, 성전의 제단은 대 제단(great Alter)이신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성경에서는 제단이 제물을 거룩하게 하며(마 23:19), 제단에 닿는 것을 무엇이든 거룩하다고 기록(히 13:10)되어 있는데, 그녀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새 계약의 핵심이며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따라서 성화는 오랜 과정을 거쳐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제단에 바치는 그 순간의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단의 제물로 바치면 그리스도께서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심으로서 성결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희생적인 섬김을 위하여 끊임없이 헌신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자신을 제단위에 놓은 모든 사람에게 … 그는 불이 내려오도록 하실 것이다. … 기다리는 모든 영혼을 위해 그는 이것을 행하시는 데에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단 위에 희생제물을 올려놓는 순간에 거룩하게 하고 태워버리는 불을 주실 것이다.

또한 파머는 “성령세례”를 온전한 성화, 기독교인의 완전과 동일시하였다. 웨슬리의 온전한 성화, 기독교인의 완전, 성결 등이 오순절적 용어인 성령세례로 발전하여 이해되는 이러한 변화는, 웨슬리의 성화 교리가 미국적인 상황에서 오순절적인 헌신과 능력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파머가 그녀의 설교와 저술을 통하여 이해하고 정립해나갔던 “성결-오순절 운동(Holiness-Pentecostal Movement)”의 시작과 관련되는 개념들은 이후 19세기 미국 성결운동가들에게 큰 신앙적 영향을 주었다. 

파머의 성결론이 19세기 웨슬리안의 성결론을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녀가 19세기 미국교회 내의 성결부흥운동을 일으킨 주요한 인물 중에 하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파머의 신학은 미국 19세기 초반 성결운동의 기원으로서 중요한 전기와 토대를 마련해주었으며, 그녀가 주도한 화요성결집회는 교회 안팎에서 성결 모임의 전형이 되어 19세기 미국 성결운동의 ‘캠프집회’ 전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제인스(Edmund S. Janes), 햄라인(Leonidas L. Hamline), 페크(Jesse T. Peck), 심프슨(Matthew Simpson)과 같은 감리교의 지도자급 목사와 감독 등 수많은 성결 지도자들이 이 집회를 통해 배출되었다.           

대표집필 정상운 목사
(성결대 교수/본지 논설위원)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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