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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100년사(9)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배경
2020-11-16 오전 10:57:00    성결신문 기자   


2. 19세기 북미성결운동
 1) 19세기말 새로운 성결 교파들의 형성
② 기독교연합선교회(C&MA)

한국성결교회의 태동에 있어서 모체 역할을 하였던 동양선교회는 만국성결교회 뿐만 아니라  기독교연합선교회로부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연합선교회(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약칭 C&MA)는 1881년 칼빈주의 목회자였던 알버트 심프슨(Albert B. Simpson)이 조직한 복음성막(Gospel Tabernacle)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심프슨은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Prince Edward)의 베이뷰(Bayview)에서 1843년 12월 15일 제임스 심프슨(James Simpson)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장로교회의 장로였던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유아 때부터 청교도적인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신학 공부를 위해 낙스(Knox) 대학에 입학한 그는 대학시절에 유아들은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유아세례 옹호와 또한 세례는 침수례(浸水禮)가 아닌 관수례(灌水禮)의 약례를 받아야 한다는 논문을 썼다. 1866년에 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는 토론토에 거주하는 마가렛 헨리(Margaret L. Henry)와 결혼하였으며, 캐나다 낙스(Knox) 장로교회로 부임하여 8년간의 사역 가운데 교회부흥을 크게 일으켰다.

 그러나 캐나다의 추운 날씨로 인하여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고, 주변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오하이오 강 건너편에 있는 켄터키(Kentucky)주 루이빌(Louisville)에 세워져 있던 체스트너트(Chestnut)가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1874년에 시작된 이곳에서의 목회는 약 6년간 계속되었다. 

이 시기의 목회사역 기간 동안 그는 대학교에서 배운 칼빈주의의 엄격하고 폐쇄적인 구조의 가르침에 대하여 재고(再考)하게 되었다. 심프슨은 하나님을 갈망하며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중에 캠페인을 위해 전국을 여행하던 복음 전도팀 휘틀(Major Whittle)과 복음송 가수 블리스(R. Bliss)를 만나 교제하게 되었다. 이 만남 이후 그는 처음으로 종교적 각성과 동시에 대중전도를 지향하게 되었다.

또한 심프슨은 루이빌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 지역의 소외된 자들의 대중전도의 필요성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성결의 체험을 가졌는데, 그는 죄의 시각에 대한 또 다른 깊은 경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성결의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이심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때는 중생을 경험한 지 15년이 되는 해였다. 

이후 그는 1880년에 뉴욕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버챠드(Burchard) 박사가 ‘13번가 교회’(Thirteenth Street Church)를 사직하자, 그 교회 제직들이 심프슨을 그의 후임자로 추대하여 그를 청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뉴욕에 와서 The Gospel in All Lands 라는 선교잡지를 출간하였다.

 뉴욕에서의 목회사역에도 불구하고 직접 심프슨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칼빈주의 목회자로서 이전과 다르게 신유 체험의 강조와 약례 대신 침수례를 주장할 뿐더러, 유아세례(乳兒洗禮)를 반대하는 자신의 행동이 장로교회 교리와 상충된다는 점이 교회 제직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외되고 버림받은 빈민층 대중의 전도에 대한 책임감의 발동이었다. 그는 대중 복음전도의 개인적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기존 틀에서 탈피하여 신앙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함을 깨닫고, 2년 후에 자진하여 교회를 사임하였다. 

장로교를 이탈한 후 몇 주일이 지난 뒤 심프슨은 17명의 창단 멤버와 함께 모임을 조직하여 44번가 가까이 8번가 동쪽에 위치한 건물에 정착하였는데, 이것이 복음성막(Gospel Tabernacle)의 출발이었다. 

1882년에 심프슨은 성서훈련원(Bible Training School)을 설립하였고, 후에 나약(Nyack)으로 옮겼는데 이 성서학교는 북미 최초의 성서학교가 되었다. 이는 평신도의 세계선교를 위한  훈련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심프슨은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의 선교 방법론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다’라는 신앙선교(Faith Mission)의 원칙 아래 학력이 다소 떨어지는 복음전파에 대한 선교적 열정이 있는 평신도들을 선발하여 성경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시킨 후에 선교사로 활동하게 하였다. 

1887년에는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한 평신도 중심의 선교단체인 기독교인 동맹(Christian Alliance)과 복음주의 선교사동맹(Evangelical Missionary Alliance)이 설립되었다. 이 두단체는 1897년에 공식적으로 기독교연합선교회(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으로 통합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대표집필 정상운 목사
(성결대 교수/본지 논설위원)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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