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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상실과 신자 돌봄
반려동물 상실과 신자 돌봄
2021-06-14 오후 5:41:00    성결신문 기자   


과거와 달리, 대부분 반려동물 입양가족은 반려동물을 ‘가족’ 또는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인식하고 있다(20대 95%, 30대 94.3%, 40대 88.6%, 50대 86.5%). 이렇듯 가족화된 반려동물의 상실(죽음)은 가족상실에 비견되는 심리적 외상(트라우마)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실가족들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심리정서적 문제들은 반려동물 상실가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하여 가족화 하기 시작한 때는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였고, 현재, 반려동물 입양은 1,500만 마리(전 인구의 28%) 이상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더욱 증가하는 추세이다. 

반려동물(개)의 평균수명은 15년 정도인데, 영양상태와 양육환경이 좋아져 수명이 18-19년 정도가 된 것을 감안하면 2020년 전후부터 반려동물 상실가족들이 급격하게 발생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상실을 경험한 기독교 신자들은 일반인과 달리 “반려동물도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등 구원관이 투사된 다양한 질문들을 하게 된다. 또한 반려동물 건강 등에 대한 축복기도의 요청, 반려동물을 참여시키는 예배, 기독교 형식의 반려동물 장례 요청 등 한국교회 목회현장에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고, 받아보지 못한 질문들이 봇물 터지듯 발현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개 반려동물 입양 이유는 첫째, 반려동물의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 둘째, 반려동물의 비경쟁적, 비보복적 태도와 수용성, 셋째, 반려동물의 절대적 충성, 넷째, 반려동물에 대한 또는 반려동물로부터 주고받는 정서적 지지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삶에서 반려동물만한 충실한 동반자, 호의적인 대상, 조건 없는 애정의 대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반려동물과 더불어 상호작용을 하고 친화적 태도를 나타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심리정서적 안정감을 비롯하여 상당한 유익이 있다. 

반려동물이 반려가족으로...
과거에는 반려동물이 애완동물 정도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음이 분명하다. 1983년까지는 이를 ‘애완동물’이라고 불렀으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국제심포지엄’에서 동물행동학자 로렌츠(Lorentz)가 ‘함께 살아가는 동물’(companion animal: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제안하여 그것이 일반화됨으로써 애완동물을 이른바 ‘반려동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 이후에는 반려동물이 가족과 다름없다는 의미에서 ‘반려가족’(pet-family)이라고 부르며, 영어로 ‘pet-fam’(펫팸)으로 칭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가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은 동물에 대한 존재의미를 격상하여 의인화와 가족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의인화’란 반려동물 입양자가 반려동물을 인간처럼 인식하는 것인데, 이는 반려동물이 인격이 아니고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인간을 대하듯 하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반려동물은 입양가족의 중심에 존재한다. 가족 간에는 서로 소통이 없을지라도 가족구성원이 반려동물과는 스킨십이나 대화를 시도한다. 

가족의 관심은 반려동물에 집중되어 함께 놀고, 함께 운동하고, 함께 여행하고, 함께 자기도 하며, 심지어 자신의 고민을 반려동물에게 털어놓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은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 반려동물 입양가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이다. 원론적으로, 어떤 생명이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태도는 기독교적이지만, 그것에 대한 지나친 애정은 ‘우상화’가 될 수 있다는 신학적 논란도 있다.

천국에도 반려동물이 존재할까?
반려동물 상실가족이 증가함에 따라 과거에 없던 반려동물 상실과 관련한 문제를 목회(상담)자에게 상담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목회현장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성도들로부터 받게 될 질문은 “개를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실까요?” “개도 죽어서 천국에 가나요!” “개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도 죄가 되나요?”
 
“개도 없는 천국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어요?” “우리 뽀미 천국에 가도록 기도해 주세요,” “동물 없는 천국은 가기 싫어요.” “개도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구원 못하실 리가 있나요?” 이처럼 목회(상담)자에게 대들 듯 항변하는 것에 대하여 목회상담학자 데이링거(Dayringer)는 ‘저항’이라고 불렀는데, 대부분의 저항은 목회(상담)자에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반려동물이 생명을 다했을 때 구원받아 천국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대다수 신자들의 바람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함께 천국의 아름다운 숲속 오솔길을 산책하는 모습은 반려동물 입양가족들이 갖는 상상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러한 바람과 하나님의 섭리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동물도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가?’에 대한 정답은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된 바 없으므로 ‘천국에 가 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때로는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천국에는 식물이나 동물은 전혀 없고 오직 구원받은 인간만 가득한 곳일까 하는 의문은 제기될만한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 피도(Fido)를 상실한 후, ‘여전히 하늘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고 한 진술만을 가지고 동물 구원을 확증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물론, 이사야 11장 8절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의 뜻은 장차 천국에서 있게 될 일 또는 구원이 완성된 내세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이 구절의 본의가 동물도 구원받는다는 것인지, 천국에 동물이 부활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인지, 이 동물들이 하나님의 재창조에 의한 존재인지, 이것이 상징적 또는 영적인 의미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신학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동물의 삶도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던 여섯째 날에 동물을 지으신 후 좋아하셨고(창 1:25), 인간이 각종 동물과 함께 지내도록 하셨으며(창 2:19) 홍수심판 때에도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하시면서 동물들도 구원하시기 위해 방주에 들어가도록 하신 것(창 7:2)은 동물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시편 104편 10-12절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하나님은 동물을 비인격체라 하여 무시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반려동물 상실에 대한 목회돌봄
반려동물은 가족들에게 짧은 시간에 ‘생로병사’를 모두 보여주기 때문에 반려동물 상실가족들은 그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유익될 것이다. 문화적으로 표현이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에서 조차 가족 간에 죽음을 화두로 삼고 진솔하게 대화하는 가족이 30% 밖에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상황도 대동소이하리라고 볼 수 있다. 

반려동물의 상실을 단서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반려동물의 상실은 유익된 생활사건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아동에게 자연스럽게 생명의 고귀함과 죽음이 삶의 한 부분임과 그것의 불가피성, 생명의 의미와 감사 등을 교육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반려동물의 상실을 경험한 가족에게 “개 죽은 거 가지고 왜 그렇게 슬퍼해? 얼른 잊어! 똑같은 강아지 한 마리 새로 사면되지!” 이런 말은 위로가 되지 않을 뿐더러 설득력도 없고 오히려 상실가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잔인한 말이 될 수 있다. 상실 반려동물과 동종의 새로운 동물의 입양은 이전 반려동물을 잊게 하는 작용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동종의 반려동물이 오히려 정신적 혼란을 야기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경험적 진술들을 종합해 보면, 동종의 새로운 반려동물과 상실 반려동물 간의 비교(“너는 뽀미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왜 그걸 못하니? 참 이상하다!”)가 쉽게 나타나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표현형질만 동일할 뿐, 성격과 행동의 차이가 나타날수록 떠난 동물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이 더 커질 수 있다. 

또한 동종의 새로운 반려동물 입양은 아동에게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생명의 존엄성을 가볍게 인식하거나, 존재를 언제든지 쉽게 교체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대부분 반려동물 상실 경험자들은 상실과 동시에 새로운 반려동물 입양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특히, 오랜 시간 질병상태에 있었던 반려동물의 상실을 경험한 가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반려동물을 입양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반려동물의 상실에 대해 공감능력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입장이 같은 사람들끼리 지지집단을 형성하여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공감, 이해, 위로, 지지를 주고받는 것도 중요하다. 

점차 반려동물 입양가족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목회(상담)자는 반려동물 상실을 경험한 신자들의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통 받는 신자들이 문제를 잘 극복하고,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고, 온전한 삶으로 복귀(회복)하도록 위로, 지지하는 것은 목회와 목회상담의 주요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반려동물 상실은 신자들에게 명백하게 스트레스 사건이고, 정서적 안정감을 해치며, 나아가 영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상담)자는 이런 경우, 신자들의 요구가 없더라도 그것을 표현하기 어려운 사회문화적인 상황을 이해하여 적극적인 지지와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목회적 개입을 해야 한다. 

목회(상담)자는 반려동물 상실로 슬퍼하고 우울을 경험하는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뽀미를 구원하여 지금 천국에서 뛰놀고 있을 거예요’와 같은 근거가 불분명한 희망의 말로 위로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동물 구원은 없다’고 단정함으로써 슬픔과 우울을 더욱 가중시킬 필요도 없다. 이런 상실 경험은 우리도 언젠가 사랑하는 대상을 잃을 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이해의 확산, 천국에 대한 소망, 구원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목회돌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반려동물 상실로 인해 발생했을 심리적 외상으로부터 치유(복원력, 회복력, 적응성)되는 원동력을 성령의 역사로 인정한다면 기도가 회복의 주요 방편이 된다. 즉, 상실의 사전적 정의인 잃어버림 및 없어지거나 사라짐으로 인해 발생된 허전하고 텅 빈 심령에 성령의 위로와 지지로 가득 채워질 수 있도록 목회(상담)자가 돌봄의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요섭 교수 [교육학박사 / 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교양교육)칼리지 학장]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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