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니 눈이 제법 내려 쌓였다. 서설(瑞雪) 이다.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은총의 꽃가루 아닌가? 눈이 내리면 마음이 여유롭고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설날에 눈이 내려 온 땅을 덮으면 보리 싹을 비롯한 농작물들을 남은 추위로부터 지켜주어 그해 풍년이 온다고 기뻐했다. 설날 아침 흰 눈을 보면서 금년에는 코로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며칠 지나면 입춘(立春) 이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이며 한 해의 시작을 알린다. 입춘을 시작으로 다음 절기 우수까지의 15일을 5일씩 셋으로 나누어 입춘삼후(立春三侯)라 한다. 입춘이 지난 5일 후를 초후(初候)라 하여 동쪽 바람이 불어와 언 땅을 녹이며 겨울을 밀어내고, 그다음 5일인 중후(中侯)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움직인다.
마지막 5일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을 등에 지고 수면 위로 올라온다고 했다. 머지않아 땅 밑은 녹아내리고, 골짜기 개울물은 수런수런 흐를 것이고, 양지 바른 곳에서는 여린 쑥이 수줍은 고개를 내밀 것이다. 이제 겨우 설 지나고 입춘인데, 이토록 봄 타령하는 것은 지겨운 코로나 세월 때문 아니겠는가?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하며 화친을 위해 흉노족에 시집간 왕소군의 안타까운 처지를 생각하며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한탄했지만, 오는 봄은 입춘대길(立春大吉) 했으면 한다.
코로나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그 봄이 코로나 없는 봄이었으면 하고 두 손 모은다.
김동환 시인의 「강이 풀리면」 에서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 배가 오면 님도 탔겠지 / 님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했다.
우리 오늘은 강가에서 기다리자. 코로나 없는 봄을….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아 2:10-12)
淸水 ehc3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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