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12월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11월은 지난 시간들을 사색하는 계절이다. 봄의 아침과 여름의 한낮을 뒤로하고 생명의 끝을 바라보는 가을 저녁, 그리고 겨울이다. 지금은 한 해 동안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사색(성찰) 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했는데, 삶을 신중하고 깊게 생각하며 여유롭게 살라는 교훈일게다.
사과는 사과나무 위에서 대추는 대추나무 위에서 너는 내 가슴 속에서 성숙한 열매로 익어갔는데, 이제 ”사과는 / 사과나무 가지를 떠나야 하고 / 너는, 내 가슴 속을 떠나야 한다“ (나태주, 9월)
시인도 모든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세월의 흐름을 9월부터 아파했다. 가을은 열매를 향해 달려가는 들뜬 계절이지만, 그 가을의 끝자락은 모든 것을 다 떠나보내고 내 삶에 어떤 결실이 남아있는지는 깊이 성찰하는 때이기도 하다.
중국의 작가 루쉰의 산문집 ‘조화석습’이 있다. 조화석습(朝花夕拾)이란, 아침에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잎이라도 그 향기와 아름다움은 여전하니 곧바로 쓸어내지 말고 해가 진 뒤에 비로소 거둔다는 뜻으로 전해진다. 이는 삶의 여유와 삶의 성찰을 말하는 것으로 인생의 나이테가 많아져 가는 아들에게 울림으로 다가오는 금언(金言)이다.
머잖아 낙엽의 시간이 올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가만두어서 낙엽이 주는 가르침을 음미하다가 흰 눈이 내리면 그때 쓸어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낙엽을 쓸어내듯 인생의 찌꺼기도 함께 쓸어내면 생명의 끝을 바라보는 이 계절이 더욱 의미 있을 것 같다. 하루의 진실은 아침이나 한낮이 아닌 온종일 살아내고 맞는 황혼에 비로소 빛을 발한다.
한 시인은 “ … 고요가 /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 나를 들여다 본다” (서순석, 만추)고 했다. 지금은 성찰의 시간이다. 내게 있는 열매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제목을 찾을 때이다. 향기로운 삶은 조화석습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淸水 ehc3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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