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참나무 사이로 만추(晩秋) 불꽃이 화려하다. 햇살을 받은 은행나무는 황금색으로 빛나 눈부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는 낙엽의 시간이다. 잔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노천명 시인의 낙엽을 떠올린다.
“가을은 마차를 타고 달아나는 신부 / 그는 온갖 화려한 것을 다 거두어 가지고 간다 / 그래서 하늘은 더 아름다워 보이고 대기는 한층 빛난다.”(노천명, 만추) 라고 했다.
온갖 화려한 것들을 마차에 싣고 신부가 떠나고 나면, 낙엽도 떨어져 나무 위에 겨울이 내린다. 빛바랜 나뭇잎이 낙엽으로 떨어지고 나면 나무는 빈 몸이다. 모두 떨구고 긴 동면(冬眠)으로 가는 나무들은 이제 북두칠성과 은하수 세계가 가깝게 보일 것이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아닌가? 누리고, 움켜쥐고 살았던 솔로몬의 인생 고백록을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2-3) 라고 했다.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는 자가 지혜로운 삶을 가는 것이다.
만추의 끝마무리는 낙엽 쓸기이다. 구부정한 아파트 관리인은 시도 때도 없이 낙엽을 쓸고 그 낙엽들을 커다란 마대 자루에 담는다. 문득 전병호 시인의 낙엽 쓸기가 떠오른다. “또 떨어지는데 왜 쓸어요? / 깨끗한 땅에 떨어지라고요”(전병호, 낙엽쓸기) 바스락거리는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며 아름답고 멋진 삶의 또 다른 깨우침을 찾는다. 깨끗한 땅에 떨어지라고 다시 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낙엽 쓸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다 떨구고 맨몸으로 긴 동면에 들어가는 갈참나무 위로 보이는 하늘이 곧 눈이라도 오려는 듯 잿빛이지만, 북두칠성과 은하수 세계가 말갛게 보일 것이다.
새벽부터 많은 눈이 내린다. 아파트 관리인은 이제 눈 쓸기에 여념이 없다. 쓸고 나면 또 쌓여 다시 쓸어야 하나, 그래도 쓸어낸다. 다니는 사람들 미끄럽지 않게 하려고. 낙엽 쓸기가 눈 쓸기가 되었네, 세월은 그렇게 가는 것.
이제, 크리스마스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淸水 ehc3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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