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선교 조금만 더 관심을”
섬, 떠나는 이 많지만 남은 영혼 위해 복음의 닻 올리지 못해
대한민국의 섬은 총 3,150여개이며, 이중 교회가 있는 섬은 281개로 644개의 교회가 있다. 그중에서도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도에는 15개의 교회가 있으며, 이중 우리 교단의 교회만 6개가 있고 이곳에는 오늘도 묵묵히 섬을 지키며 선교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예성의 목회자들이 있다. 성결신문은 이렇게 낙도 및 오지에서 세인들의 무관심속에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탐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용항리교회 김태수 목사
꿈꾸는 교회, 내일을 준비한다
열차로 4시간, 승용차로 2시간, 또다시 배로 40분을 타고 들어가서야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승용차로 20분을 달려 예성 교단의 하나인 용항리 교회에 도착했다.
용항리 교회는 1988년 섬교회 설립을 추진하던 등촌제일교회에 의해 금일도에 예성으로서는 첫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당시 마을 주민인 김복임 집사가 매일 새벽 1시간여를 걸어서 이웃한 월송교회를 다니는 것을 보고 강의구 목사의 도움으로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여기 처음 와서는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불 한 채 모기장 하나 달랑 차에 싣고 부임하여서 모든 것을 다 새로 짓고 수리했습니다.” 부임 첫해의 심경을 김태수 담임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30호 가구에 용항리는 씨족사회로 구성되어있다.
천씨 성을 가진 씨족사회로 구성이 되다 보니 전도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지난해 부활절에 전도한 한 신자를 보고 목회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환경과 조건 속에서 묵묵히 목회에 전념하려면 나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섬교회 목회는 너무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섬 교회 목회가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잠을 깨면 파도소리, 갈매기 노래 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환경이 오염 되고 찌들은 지금, 이곳은 환경 오염이 없어 맑은 공기, 맑은 물, 무공해의 안전지대가 바로 여기랍니다. 일년이나 삼년 만에 한 영혼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끼며,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영혼이 그렇게 귀하게 여겨질 수가 없다는 김 목사는 올해로 금일도 용항리에서만의 목회가 3년, 이제 김목사의 소망은 현지에서 목회자를 키우는 것이다. “현지목회자 양성이야말로 목회의 핵이며, 가장 확실한 선교입니다” 1천명의 디모데를 키워 예성의 젊은 인재들로 양성할 것입니다.“라며 김 목사는 작지만 그러나 큰 소망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궁항리교회 오진영 목사
신앙의 초점 바뀐 행복한 교회
용항리 교회를 뒤로하고 승용차로 10여분을 달리면 작은 언덕위에 그림같이 자리 잡은 궁항리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40가구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궁항리 마을은 급수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산중턱에 위치한 궁항리교회는 더 심한 편이어서 생활용수는 물론이고 식수조차도 300m를 오르내리며 길어다 마시고 겨울에는 생활용수 조차 확보가 힘들어 이웃한 월송교회에서 빨래 및 설거지를 해오고 있다.
유일한 대안은 샘을 파는 것이나 11명의 성도가 전부인 섬 교회로서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이와 주일학교는 전혀 없고 노인 10여명이 주일이면 자리를 지켜주고 있을 뿐이다.
섬교회들의 공통된 현상은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젊은 인력이 있어야 활기가 넘치고 일할 수 있는 의욕이 나는데 대부분 7, 80대 노인들 뿐이니 의욕의 상실과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부임하고 목회를 시작할 때 마음을 비우고 시작하였지만 때로 마음 한 구석에는 비우지 못한 욕망이 일기도 합니다. 특히 문명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의 섬 생활과 목회는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죠”라며 오진영 목사는 섬 교회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쁨으로 묵묵히 내조하는 사모를 보면서 더욱 안쓰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나도 이들의 영혼을 사랑하여 마음을 비우고 이 곳에서 주님 주신 은혜로 내 잔이 넘침을 고백하며 남은 생을 기쁘게 주님께 드리며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고 말하는 오 목사의 해풍에 검게 그을린 피부와 넓은 어깨가 더욱 더 넓어 보인다.
월송리교회 이강태 목사
많은 열매보다 좋은 열매맺는 교회
월송리 교회 이강태 목사가 예성과 인연을 맺은 지는 20여년전의 일이다. 이 목사는 원래 장로교 목사로 1984년 2월 월송리에 부임하여 1986년부터 금일도 일대를 복음화 시키기 위해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모으고자 노력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던중 등촌제일교회 강의구 목사의 도움으로 1988년 8월 용항리 교회를 시작으로 1988년 11월 궁항리 교회, 1994년 4월 동송리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이 목사는 그가 속한 교단으로부터 타교단 교회를 건립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1990년 8월 예성으로 전향하여 월송리에 교회를 세우고 11월에 첫예배를 드림으로 월송성결교회는 시작이된다.
당시 월송성결교회는 외양간 자리에 천막으로 지은 교회여서 이를 두고 주위에서는 치깐(화장실)교회라 했다고 전한다. 교인들이 예배당을 새로 짓고 예배를 드리던중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교회를 부수고 기물을 파손하는 일이 있었다. 이유인즉, 지나가던 중이 “한마을에 교회가 2개 있으면 그 교회는 망한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섬이라 무속신앙이 강한 마을 주민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 목사를 집단구타하고 교회의 집기들을 부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눈물의 기도가 강단위에 뿌려졌을지 어림풋이 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온갖 우여곡절과 아픔과 고통의 환경속에서도 선교는 계속됐고, 이목사의 사역 또한 계속되어 오늘의 월송성결교회가 있게 된것이다. 이 목사는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한 교회를 세워야한다. 내가 가더라도 교회는 세워야한다는 신념으로 사역하며 살아왔다.”며 지난 20여년을 회상한다.
“이제는 복음화죠 마을의 복음화를 위해 금일도의 복음화를 위해 일해야죠. 도시의 목회도 중요하지만 섬에 계시는 하나님과 도시에 계시는 하나님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한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곳에 자리 잡고있는 이 목사는 오늘도 은퇴 없는 전도의 열정을 금일도에서 불태우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금일도의 선착장 너머로 드리워진 낙조는 젊음을 담보로 지난 수년간을 그리고 앞으로도 남은 생을 섬에 바칠 예성의 목회자들의 열정만큼이나 붉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