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송리교회 조승연 목사
새사람 새비전의 동송리교회
금일읍 동송리는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피신한 이천서씨와 김해 김씨, 경주 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동송리는 원래 소나무 숲이 좋아서 솔개라고 불려왔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마을이 분리되고 동송리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아직도 마을 입구에는 노송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마을 한켠에는 동송숲이라는 마을 숲이 있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동송리교회는 20여년전 이강태 목사의 주선으로 동송리를 전도지역으로 삼고 최보혁 권사 안방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 되었다. 그후 마을 회관을 빌려 창립예배를 드리고 대지와 건물을 구입하여 비로소 예배당의 모습을 갖춘 교회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타교회에 비해 이곳 동송리교회는 비교적 젊은 세대들이 많던 교회였다.
전임 교역자 장세종 목사의 역량으로 연합수련회를 비롯한 청소년리더훈련을 13차 까지 이어가며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목회에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한켠에 공부방을 운영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방과 후 수업과 80%에 가까운 문맹률을 줄이기 위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글수업도 병행했다. 그러나 장 목사가 꿈의교회로 옮겨가고 섬의 젊은이들도 하나 둘 육지로 떠나며 동송리에는 70세대의 독거노인만이 남은 노인촌으로 전략했다. 동송리교회의 현재 평균 연령은 75세이며 가장 젊은 가정이 62세이다. 조승연 목사는 지난 2009년에 이곳에 부임하여 동송리에서의 두번째 봄을 맞고 있다. “마지막 교회로, 목회의 마무리를 짓는다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낯설고 언어 다른 지역으로 사명을 가지고 선교사로도 가는데 목회자에게는 도서지방도 선교지인데.....”라며 말문을 연 조목사는 “전도를 해보면 몇 안되는 젊은이들은 바빠서 못나옵니다. 늙어서 70되면 그때 교회서 보죠”라며 웃지 못할 말을 던진다고 한다. 대부분이 양식업을 하는 것이 주 원인이기 때문이리라.
다행스런운 것은 그래도 이곳의 교회들은 복음을 전하더라도 해당 지역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 “몰려 다니지 않고 교회가 소속된 지역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전도는 더디지만 소망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데 도시와 같이 각박하지는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맙습니다. 다행스러운것은 부임하는 첫해 노부부가 교회등록을 해 주셨습니다. 최근에는 형편 어려워 고향으로 내려온 한 가정이 5살 꼬마를 데리고 와서 3명이 더 늘었구요.”라며 신이 난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사람이라도 내 설교를 듣고 아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성도를 볼때는 조 목사는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한다.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안타까운 것은 마을 노인들이 글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곳에 부임하자마자 한글을 깨우치려 도왔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고 한다. 비록 글은 몰라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이들이 말씀을 깨닫고 말씀으로 위로와 평안을 얻길 조승연 목사는 지금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도장리교회 최병두 목사
하나님 사명 안고 비전 향해 비상하는 교회
1992년 한국사회는 한명의 중년남성에 의해 큰 혼란을 겪게 된다. 이장림이 이끄는 다미선교회와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휴거에 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한국 기독교계는 종말론에 심취해 몇 개월째 행방불명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휴거 날에 대비해 수십 명씩 집단생활을 하거나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 등 교사와 공무원, 대기업 간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휴거 소동에 휘말렸다. 그 중심에 이곳 금일도 도장리교회도 끼어있었다.
1대 목사인 박종철 목사는 교회 부흥을 일으키던 중 휴거론에 심취되어 교회와 성도들을 이끌고 다미선교회에 입적하며 금일도 일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픔이 치유될 무렵, 도장리교회는 또 한번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2003년부터 박철순, 박종팔 목사를 거치며 교회는 2층으로 건축을 하였고 건축중 교인들과 외부사람들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세상법정으로 가는 소송까지 이르게 된다. 후에 부임한 강윤식 목사가 재판에서 승소하고 비로서 안정을 찾게 되지만 이렇게 크고 작은 상처를 거치면서 성도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 2명만이 힘겹게 교회를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2009년 6월 최병두 목사가 새로 부임하며 교회는 다시 변화와 새바람의 중심축에 서게 된다. “당신, 여기 뭐하러 왔어?” 부임 후 첫 인사를 다니는 최 목사를 두고 마을 사람들이 했던 말이다. 당시 최 목사는 “주민이 새로 왔으면 환영을 해줘야죠!” 라며 당당하게 임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뇌리에는 소수이지만 아직도 휴거교회, 싸움과 분란의 교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마을을 다녀보면 「왜 도장리 교회가 흩어졌나? 쓸만한 젊은이 하나만 있어도 교회 나가겠다」고 말하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지요.” 라며 당시를 이야기 한다.

최 목사는 부임 후 중단되었던 성전건축을 위해 힘을 쏟았다. 2005년 이후 공사가 중단된 교회는 새로 짓는 마음으로 공사를 마무리 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주셨고, 물질이 필요하면 물질을 보내주셨지요, 헌당예배를 드릴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더군요” 그렇게 도장리교회는 지난해 12월 15일 참으로 기나 긴 건축을 마무리하고 헌당예배를 드렸다. “나는 부족한점 많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역 감당함에 있어서 멈추지 않습니다. 끝까지 복음전도에 충실할 것입니다”. 이제 도장리교회는 내년이 지나면 자립하는 교회가 될수 있다고 한다.
도장리교회가 자립하면 지역사회와 교단내 연약한 교회들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한다. “섬에서도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더 작은 교회를 끌어 안고 갈 수 도 있다는 것을 이곳 바로 도장리 교회가 보여주겠습니다” ‘쉼·힘·꿈’을 주고자 하는 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닮아 가는 교회를 만들기 위한 최병두 목사의 꿈이 그렇게 무르익어 가고있다.
일정리교회 이남승 목사
마지막 시대 쓰임 받는 교회
꽃이 피는 것도 한철이고 섬을 찾는 여행객의 발걸음도 한철이며, 한때뿐이다. 세월 따라 섬에 살던 주민도 이사를 가버렸다.
그러나 변함없이 섬과 함께하는 것은 마을 어귀에 자리잡은 은행나무와 언덕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튼튼한 돌담위에 세워진 일정리 교회뿐이다. “여기온지가 지금이 4월 됐으니 6년 됐군요. 전에 있던 교회에서 목사님 모시고 다니면서 신혼부부들도 낙도로 선뜻 들어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많이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05년 3월 말일에 이곳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부임 당시 교회는 3가정에 7명의 성도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중 90이 넘으신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어머니 처럼 생각하고 지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할머니를 두고 교회밥이나 축내고 다니는 노인이라 손가락질 했죠, 그 할머니는 제가 알려준 대로 잊지 않고 늘 기도를 하셨습니다. 고통없이 자는듯 데려가 달라고... 그 할머니는 그렇게 가셨습니다. 헌금 한번 봉사 한번 안했지만 그렇게 구원을 받으시고 가시는것이 제게는 큰 기쁨이였습니다.” 지금도 이 목사는 노인분들을 볼 때마다 이 애기를 들려주고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고 한다.
어렵고 힘든 생활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한 선교사를 보내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구나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라는 이 목사는 요즘 들어서 큰 즐거운 일이 있었다. 교회에 애를 먹이는 집사가 있었는데 결국 다른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교인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고 이를 지켜본 그 집사의 딸이 일정리 교회로 다시 다니자고하여 이제는 온가족이 함께 출석을 하게 되었다는것이다. 부임초 3가정이 이제는 25가정이 되었고, 초신자도 많이 늘어 이제는 제법 설교할 기운이 난다는 이 목사는 일정리교회 부흥을 위해 3차례에 걸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중이다.

올해가 두 번째로 오는 2014년까지 성숙한 교회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열악하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이뤄주실 줄을 믿고 여지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생활하면 채워주실줄을 믿고 기도합니다.”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
이제 금일도는 우리예성의 목회자들이 있어 金日도가 되어가고 있다. 파란색 물감을 풀어놓은 남해바다의 추억,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섬을 떠올리자 여섯 목회자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아름다운 금일도의 모습속으로 녹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