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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가득한 사무엘과 마주하다
사람 냄새 가득한 사무엘과 마주하다
2019-07-29 오전 10:17:00    성결신문 기자   


이승훈 목사 [새벽이슬교회 / 광주지방회장]

사무엘 선지자, 그는 암울했던 시대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여명을 연 사람이다. 사사시대 말미에 벌어진 동족간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공동체는 만신창이가 된 것도 모자라 급기야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가나안 정착생활의 구심점이었던 실로가 파괴되고 성막은 훼파된 채 법궤마저 빼앗긴다. 가나안 본토에 대한 주도권마저 위기에 처했으니 요단 동편의 처지 또한 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시기에 극적인 태생과 영민한 영적 감각을 바탕으로 성장한 사무엘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새아침을 연다. 사무엘의 탁월한 영적 지도력에 대해 후일의 역사가는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블레셋이 다시는 침범치 못했다고 평했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사무엘의 이러한 선지자적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브엘세바에서 재판장의 일을 보던 두 아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그르치고 있었음에도 훈계하거나 바로잡지 않은 사무엘에게서 우리는 선지자적인 이미지와 전혀 다른 낯선 사무엘의 모습 앞에서 잠시 주춤한다. 

우리가 이 지점의 사무엘을 공의를 실천해야할 선지자나 자녀를 바르게 가르쳐야할 아버지로 바라본다면 부인할 수 없는 흠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사무엘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다. 자녀의 그릇된 행실에 대해 사무엘이 보여 준 행동에는 사무엘의 뼈아픈 성장과정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로서 역할 모델을 학습하지 못한 사무엘이 아버지가 되다.
어릴 적부터 부모를 떠나 실로의 성막에서 생활하던 사무엘은 부모의 사랑에 굶주린 채 성장한다.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았지만 그는 아버지로서의 역할 모델에 대한 학습이 결여된 채 가장이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자란 사무엘은 아버지가 되자 자기가 받지 못한 사랑을 두 아들에게 쏟아 낸다. 

사사직 세습에 대한 불편한 시선마저 외면한 채 사사로 임명 하는가 하면 두 아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임한다.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사랑에 대한 결핍을 마치 한풀이 하듯 두 아들에게 집착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얼마나 집을 그리워했으면 고향인 라마를 사역의 거점지로 삼았을까?

물론 성막이 있었던 실로가 파괴되어 다른 선택사항이 요원했겠지만 고향집을 사역의 중심지로 선택하는 사무엘의 모습에서 부모와 집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는지를 짐작케 한다. 인생 말년에 그가 보여 주는 이런 행동패턴에는 부모를 떠난 독특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과정의 상처로 인해 왜곡되게 빚어진 가장의 모습과 수구초심을 추구하는 자연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성경 본문을 통해 마주하고 있는 사무엘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자녀훈육에 대한 사무엘의 잘잘못을 떠나, 어릴 적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 웅크려 있는 상처를 짓눌러 가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일평생 헌신할 수밖에 없었던 사무엘의 처지가 나는 못내 가슴 아프다. 나는 성장과정에서의 상처로 인해 일그러진 아버지의 자화상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사무엘을 옳고 그름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긍휼이 필요한 한 인간으로 들여다  봤으면 좋겠다.

성숙한 사람은 인간이해의 폭이 너른 사람이다. 바울 사도는 율법적인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역 초기에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매우 인색했다. 안디옥 교인들 앞에서 베드로를 대 놓고 면박을 주는가 하면 전도 여정에서 이탈한 요한 마가를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그러던 바울 사도가 성장통을 거쳐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할 줄 아는 성숙을 이룬 이후에는 다툼이 있던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권고한다(빌 4:5). 이처럼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너른 사람이 곧 성숙한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품성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도 인간을 이해하고 용납하셨기에 하늘마당에서 인간의 삶의 자리로 내려앉아 문제가 가득한 우리의 모습임에도 우리와 동거하시지 않은가?  

오늘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그토록 심각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사무엘의 자녀문제에 대해 정작 하나님은 왜 침묵하셨을까? 사무엘의 깊은 아픔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아파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차이는 사람에 대한 공감력에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인 잣대로 사람을 재단했지만 예수님은 인간냄새를 풀풀 풍겨 내는 사람 그 자체에 눈길을 두셨다. 

혈루증으로 인해 가슴앓이로 애태우던 비련의 여인, 삶이 버거워 몸을 팔아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렸던 기구한 여인, 부정함을 전염시킨다 하여 가는 곳마다 돌팔매질을 당해야만 했던 설움 가득한 문둥병자, 사람 취급을 받고 싶은 갈망에 젖어 살던 여리고의 세리...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바리새인은 함부로 재단하고 정죄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에 대한 공감, 삶에 대한 공감, 아픔에 대한 공감으로 이들의 애달픈 삶과 마주하셨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인정사정없이 사무엘의 삶에 깊숙이 베인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고 있다. 이들과 다르지 않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상대의 아픔과 상처는 안중에도 없이 그를 재단하려 들던 우리 또한 같은 부류가 아닐 런지, 오늘 성경은 작디작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부끄럽고 초라하게 한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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