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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을 회복하자
부활 신앙을 회복하자
2018-03-26 오전 9:15:00    성결신문 기자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 십자가도 부활도 그 의미가 점점 퇴색해가고 있다. 외형상으로 예배당 전면, 강대상 뒤에 붙어있던 십자가 대신 대형 스크린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십자가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일까 교회 종탑 위에 우뚝 서있던 십자가가 현대식 건물로 지은 교회에서 자취를 감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십자가는 죽음인데 죽음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생각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묘지나 납골당은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자기 동네에 들어서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 자기도 언젠가는 죽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께 마귀는 달콤한 제안을 한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지 않고도 온 천하와 그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을 한다.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인도하여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자기와 타협하면 즉, 자기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줄 것이라 말한다. 정도(正道) 아닌데도 편한 길,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길을 가고 싶은 인간적 약점을 노리는 것이 악한 자 즉 사탄이 하는 일이다. 의가 아니면 아니요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실 일에 대해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기도하시며 죽음의 잔이 자기에게서 지나가기 원하셨다. 그러나 자기의 뜻 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신 예수님의 순종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이어졌다. 예수님께 죽음은 탄생의 목적이었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며 땅에서 이룰 인류 속죄의 대업이었다. 유대 광야를 거니시던 예수님을 만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하였다. 죄 값은 사망인데 온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당하실 희생 양으로 예수님을 소개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십자가를 질 것을 명령하셨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고, 환난과 핍박 후에 영광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후의 세계가 있는 것을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강도가 깨달았듯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부활 신앙이 신자들에게 있어야 한다.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이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을 때 신앙을 버리라는 회유에 “86년 동안 나는 그분의 종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분은 내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를 구원하신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 죽음으로 위협하자 그는 땅에서의 하루가 줄면 하늘에서 하루가 는다는 말로 타협을 거절하였다. 화형(火刑)에 처하겠다는 말에 폴리캅은 잠간 나를 태우고 꺼지는 불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외치며 그 담대함을 버리지 않았다. 

나치 독일에 저항하던 신앙인이며 신학자이던 본회퍼는 불의에 대해 교회가 침묵할 때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헤롯 안디바의 악행 즉, 동생의 아내를 뺏어 결혼한 잘못을 책망하던 세례 요한처럼 본회퍼는 불의에 저항했다.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투옥되고 2차 대전 종전이 가까워오던 1945년 4월에 처형될 때 그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내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말하며 내세를 바라보며 부활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불의를 책망하는 대신 세상의 불의가 신자 안에, 교회 안에 자리 잡는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불의를 책망하기보다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은 십자가를 피하려는 비겁함이며 고난 후에 올 부활 신앙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이들이 가해자를 지목하고 피해사실을 드러내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에 정치계와 문화계는 물론 대학과 중·고등학교에까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신자와 교회 지도자들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성(性) 문제 뿐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과 첫째가 되려는 명예욕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행위로 연결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타락한 본성이 우리를 죄의 법 아래로 이끌어 가려는 유혹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고 신앙에 상처를 입었던가 돌이켜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아는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자기가 미처 모르는 죄까지도 알려주시기를 기도했다. 음행의 죄 때문에 대적들에게 훼방할 빌미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비록 죄는 용서받았지만 죄 값 즉 죄에 대한 벌이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미치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자신은 물론 자손에게까지 죄얼을 물려줄 위험에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지금(now) 여기서(here) 잠시 얻는 쾌락을 따르려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따라야 할 제자의 길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신자와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는 일이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신자들은 겉 사람 즉 육의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자기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자기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증언한다.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는 사람이 십자가 신앙을 지닌 사람이다. 세상에서 잠시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장차 나타날 영광을 사모하는 것이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과일나무에서 꽃이 떨어졌을 때 꽃 떨어진 자리에 맺힌 자그마한 열매가 다른 꽃이 질 때 거기에서도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게 한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시다. 생명이며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어질 은혜가 부활을 통한 영생이다.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 즉 신자들의 부활이 약속되어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혈과 육(血과 肉) 즉 땅에 속한 사람이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바뀌는 놀라는 변화가 죽은 신자나 살아있는 신자에게 똑같이 주어질 것이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한다.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고 영적인 부활만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이 성경을 인용한 것같이 부활 반대론자들도 성경을 인용한다. 즉 로마서 8:10에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육은 무익하며 부활할 가치가 없고 부활하지도 않으나 영적으로 다시 사는 것이 부활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절에 육체의 부활을 말하고 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하며 몸의 부활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단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들만 골라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전체적으로 파악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들은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초대교회 시대에 부활은 이미 지나갔다고 말함으로 믿음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에 대해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진리에 대해 잘못된 사람들이라 말하며 경계하고 있다(딤후 2:18).

부활 신앙은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목숨을 걸고 전하던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도들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가 채찍질하고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위협했다. 이 때 사도들은 자기들에게 복음의 증인 즉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스스로 판단하라고 담대히 말하고 기쁨으로 공회 앞을 떠났다(행 4:1-2, 행 5:29-32). 그리스도를 위해 사슬에 매인 바울도 심문을 받을 때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고 말했다. 

십자가의 대속과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뿌리이다. 율법의 의로 구원에 이를 육체가 없음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구원자로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을 의롭다 칭하시고 양자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자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보증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며 자기가 재림주이며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다고 속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도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들의 주장이 헛된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죽으심이 속죄의 완성이고 신자들의 부활을 담보하는 확실한 표가 된다.

현대교회는 고난주간에 혹은 조금 기간을 늘려 사순절 기간에만 십자가를 묵상하고 전하는 값 싼 복음에서 벗어나 초대교회의 모범을 따라 항상 십자가와 그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성탄절이 산타클로스의 생일로 오해되고 선물을 주고받는 절기로 변질되고 있는 것처럼 부활절은 달걀을 나누어 먹고 절기에만 부활찬송을 부르는 폐습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늘 피 묻은 복음을 전하고 부활의 소망 가운데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 부활과 그에게 붙은 자의 부활을 전해야 할 것이다.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가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역자는 물론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여하게 될 소망 가운데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야 한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죄의 유혹에서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고 있다고 하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Cross)는 고난이며 죽음이지만 주님 다시 오실 때 면류관(Cross)으로 바꾸어주실 줄 믿고 날마다 죄와 세상에 대하여 죽는 체험이 일상화되어야 할 것이다(고전 15:31). 

못된 자아(自我)가 죽어야 할 줄 알면서도 죽지 못하는 연악과 그로 말미암아 짓는 죄를 가슴 아프게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갈 때 날마다 속죄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믿음 안에서 담대함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믿을 때 신자 안에 내주(內住, indwelling)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순종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살 때 육에 거하지 않고 성령 안에 거하는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령충만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고 어두움의 빛으로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신자 개인과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부활 신앙을 회복할 때 신자와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죽은 자들 가운데 첫 열매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하는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훌륭하게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 성기호 목사·본지 논설위원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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