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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장 다문화 교회의 선교목회
신상록 목사(푸른초장교회)
2018-12-13 오후 6:26:00    성결신문 기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이주민이 2016년 기준 963,174명으로 100만 명에 육박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다문화선교위원회는 지난 6일 세미나를 개최하고 다문화 선교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 사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다뤄진 다문화 교회 목회 방안에 대한 강의를 다시 정리하여 옮겼다. 향후 다문화 선교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이고 발전적 과제가 무엇인지 지면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편집자 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필자의 다문화 선교사역은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이 이루어주신 터전 위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이주민 선교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진행되어 왔다. 첫 번째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의 경제성장과 88년 올림픽의 성공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는 국내 경기활성화로 인한 도시화의 급속한 진전은 농어촌 청년들의 배우자 부족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국제결혼이 증가하였고, ‘다문화가족’이 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정문화가 등장하였다. 특히 이시기는 소련(1990)과 중국(1992)과의 수교로 발전되면서 동포들의 국내 유입이 크게 신장되었다. 이들에 대한 선교를 주도한 것은 시민사회단체였다. 초창기 이주 노동자 사역은 인권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 졌으며, 노동자들의 자유취업과 임금채불, 노동환경 개선이 주요 과제였다. 

국내에 다문화 이주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2018년 11월 현재 약 270여 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필자가 활동하는 경기도 포천은 중소업체가 약 5,700여 개나 된다. 각 사업장의 외국인 의존율은 90%이상이다. 포천경제의 약70-80%를 이들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인구절벽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초등학교가 문을 닫거나 통폐합하고 있고, 고등학교는 모집이 안 되고 있다. 2018년도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6명인 학교도 있다. 

2017년 12월 말 전국 저 출산율은 1.05%이고, 출생아는 2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출산 통계사상 최저수준이다. 국가안위를 걱정해야할 때이다. 학자들은 이에 대한 대안이 외국인 주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주여성들은 우리가 애 낳는 기계냐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다문화 이주민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 역시 진정한 다문화 사회통합의 길이 아직은 여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자는 16년 동안 회사 목사로 근무하며 복음을 전했다. 11년은 무역회사에서, 5년은 외교부 선교에서 복음을 전했다. 무역회사 사목시절 회사일로 베트남과 미국, 중국 등 현지 사업장을 몇 번 방문한 바 있고, 외교부 사목시절에는 외교관들로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다문화 경험을 들은 것이 전부이다. 한 번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을 해 본 경험이 없으며 할 계획도 없었다. 

그러나 오래전 소천하신 성민교회 신현균 목사님의 도움으로 대만에 유학을 갔다 온 적은 있다. 우연은 없는 것 같다. 외교관들과의 만남은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그렇다면 가족의 안정을 위해서는 자녀들을 위해 다문화 경험이 많은 외교관 크리스천들이 대안학교를 세워 봉사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필자는 크리스천 외교관들이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을 갖기를 바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문화사회에서의 크리스천의 역할’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고 그 결과 ‘다문화 대안학교’ 설립을 시작한 것이다. 대안학교 설립은 평소 필자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다문화 대안학교’는 하나님께 응답을 받은 것이다. 대안학교를 시작하기 위해 방송대학에서 관련 공부를 했다. 필자는 대안학교를 통한 청소년 목회를 위해 경기도 포천으로 교회를 이주했다. 

당시 상계동에서 13년 동안 목회하면서 교회는 안정되고 재정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유럽교회가 청소년 선교에 실패한 결과 텅빈 교회가 되었다는 어느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청소년 목회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안학교를 할 것인지는 정하지 못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축석령 고개를 넘어오면서 기도했다. 

이제 교회도 옮겼으니 어떤 유형의 대안학교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까요? ” 사람들은 영어중심의 국제학교를 하는 것이 어떻냐는 이들도 있었다. 탈북청소년에 대한 학교를 제안받기도 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이 왔다. 버스를 타고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성에 들어가시는 장면이 나타나더니 어느새 내 마음을 환하게 채워졌다. 응답이었다. 예수님이라면 다문화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내 마음은 뛸 듯이 기뻤다. 주님께서 분명한 응답을 주셨기 때문이다. 지난 14년 동안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데는 주님의 응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재정적인 어려운 고비가 많았다. 사람들로 인해 고생한 일도 많았다. 놀라운 것은 주님은 필요한 만큼  채워주셨고,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2005년 봄, 어느 금요일 밤, 선교회원들과 상계동 불암산에 올랐다. 너무 건조한 신앙생활을 바꿔 보기 위해서였다. 기도하고 내려오던 중 선교회 회원인 최성수 대사(당시 과장)가 물었다. “ 목사님 전에 말씀하신 다문화학교 설립하는 일 지금도 변함없습니까? ” 그렇다고 하자 “그럼 제가 돕겠습니다.” 제안한지 1년 만에 들은 첫 반응이었다. 그 해 가을이었다.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압구정동 소망교회 교육관에서 첫 설립준비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2006년 12월 1일에는 “ 다문화가정자녀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의 주제로 삼성문화관에서 첫 번째 세미나를 개최했다. 강사는 평화물결 대표 김용성 박사와 설립위원이신 외교부 손치근 박사(카자흐스탄 총영사 역임) 였다. 세미나 소식은 국내가 아닌 미국 뉴욕 주재 연합뉴스로 전 세계에 알려졌고, 한국 언론은 뒤늦게 보도하였다. 국민일보는 1면에 메인뉴스로 다뤘고, 사설에서도 첫 번 주제로 기사화 되었다. 

그러자 교육부와 포천시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실재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다. 어떻게 하려는 것이지 진행상황을 알려달라는 정도였다. 한국교회도 관심 밖이었다. 반면 통일교에 속한 회사 간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를 지어 줄 테니 학교이름을 자기들이 정하는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나중에 통일교인줄알고 거절했다.  

현재 학교는 포천시 호국로 429번길 23에 위치하고 있다. 필자가 목회하는 다문화교회의 350평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학교가 시작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관심과 후원이 있었다. 또한 아픔도 컸고, 실망도 컸으며,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일하지 않으면 상처도, 아픔도 영광도 없기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 힘들지 않고 이뤄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실패도 실적’이라는 말이 인생철학처럼 되었다. 학력인정 다문화 대안학교와 법무부지정 사회통합센터 그리고 다문화 교회가 설립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헌신과 도움이 컸다. 

고천교회 김재용 목사와 외교부 선교회 최성수 대사, 손치근 총영사, 박일호 총영사, 김봉현 대사, 이견호 교장, 법무부 차용호 영사, 제자인 김동완 목사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센터가 세워진 이후 12년 동안 동역하고 있는 정경일 국장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홍근 홈패션의 대표이사 이선희 권사는 무상으로 건물을 사용하게 해 주었다. 순탄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려움도 많았다. 다문화 교회와 학교를 시작하자 한국학생들을 위한 학교인줄 알았던 교인들이 실망하고 떠난 것이다. 

또한 이사들도 대부분 외교관들이라 대부분 공관으로 떠나자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문화교회로 목회방향을 바꾸기까지 많은 기도와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약 6개월 동안 주일 오후 예배는 다문화 선교를 집중 강의 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교인들 사이에서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 목사님이 우리를 버리고 외국인들을 위한 교회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을 전도하고 함께 예배하려면 한국인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했는데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 와중에 다문화 사역을 반대하는 성도들이 나타났고, 결국 2012년 가을에 다문화 교회를 선언하였다. 

다문화 교회를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한국인 교인과 다문화 이주민 교인 간에 보이지 않은 경계가 있었는데 이제는 노동자와 다문화 가족 간에 미묘한 경계가 형성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일이 있으면 교회출석률이 낮고, 다문화 가족들도 가족 간에 부부간에 잦은 불화로 정착시키기가 몹시 어려웠다. 부인들이 교회에 열심이면 남편들이 시비를 걸고, 교회와 남편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과제는 다문화 교회의 정체성도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6개국 이상의 교인들이 모이다 보니 언어소통은 둘째 치고, 설교하는데도 여간 어려움이 많았다. 알아듣도록 하려면 어린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것보다 더 천천히 간단하게 해야 한다. 또한 한국인 교인이 많지 않아 그들을 도와서 곁에서 성경도 찾아주고, 찬송도 찾아줄 도우미가 절실했다.  하지만 한 번도 이러한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으며, 하나님이 열어주실 새로운 길을 찾고 감사하고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학교와 센터에는 매달 1천여 명의 교육생들이 모이고 있다. 그들은 모두 복음을 전할 선교 대상이다. 그들 중에는 난민도 있고, 무슬림들도 있다. 다문화가족 여성들과 동포들, 유학생들도 있다. 필자는 이들에게 한국사회를 가르친다. 0단계부터 4단계까지는 한국어 과정이지만 마지막  5단계는 한국사회 전반을 교육하면서 복음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주민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면서 알게 된 것은 상대방이 어떤 종교를 가졌든 인간관계가 형성되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해진 복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6명의 다문화 이주민 집사도 세워졌다. 금년 성탄절에도 세례도 주고 직원으로 세울 계획이다. 하지만 스스로 무엇을 할 만큼 자립심이 크지 않다. 다문화 선교와 목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 생명 다 할 때까지 주께서 주신 사명의 길을 달려가려고 한다. 

신상록 목사(푸른초장교회)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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