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고추잠자리 오가고 과수원에는 열매들이 익어 가고 있다. 누렇게 익어 가는 벼 이삭은 조만간 들판을 황금색으로 물들일 것이다. ‘열매’는 결정체이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야 할 열매들이 많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열매는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존재(Being)의 열매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에 대한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헨리 나우웬은 「생각나게 하는 사람」(The Living Reminder)이란 책에서 사역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치유하심과 붙드심과 인도하심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사역자뿐이겠는가? 모든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으로 세워진다면 참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둘째, 사역(Doing)의 열매이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는가? 는 존재의 열매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가’는 사역(Doing)에 관한 문제이다. 무슨 일을 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결정된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키탄질리에 보면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생명이 가득 찬 그릇을 당신 앞에 갖다 놓겠어요.”라는 대목이 있다. 우리는 그날 주님 앞에 설 때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내가 내미는 그릇에는 어떤 것이 담겨있을까? 주님은 심판대 앞에서 두 가지 질문을 하실 것 같다.
존재의 열매와 사역의 열매이다.
시인 장석주의 대추 한 알에 보면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번개 몇 개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게다 /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 둥글게 만드는 것 일게다 / 대추야 /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라고 했다. 대추 한 알은 우주이며, 그 속에 인생이 담겨있다. 수고의 땀과 희생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존재의 열매나 사역의 열매도 남모르는 수고가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0)
淸水 ehc3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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