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여러 가지 역설적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설을 단순히 말장난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역설에는 역설을 해석하는 원리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식물의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뿌리를 강화시켜야 하듯이 역설을 이해하려면 간접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참된 가치는 직접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기쁨과 행복이나 안식 등은 직접 취하려고 하면 잡을 수 없는 것 들이다.
본능은 이런 것을 직접 취하라고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기쁨이 아닌 쾌락에 빠지고 행복이 아닌 조건으로 치장하게 되며 안식이 아니라 권태에 빠지게 된다. 참된 가치란 각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때 얻어지는 간접적인 것이다. 그리고 역설은 반드시 과정을 겪어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잃으려고 하는 과정을 충실히 수행하다 보면 얻게 되고 낮아지려는 과정을 진실 되게 수행하다보면 어느새 높아지게 된다.
모든 역설은 그 과정을 강조한다.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역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게 되고, 잃으려고 하면 찾게 된다.”(마16:25)는 말씀처럼 참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마23:12)는 말씀도 자기를 낮추려는 시도를 하는 과정 속에서 결과적으로 더 높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겨울에 산에 올라가 아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걸어서 올라갈 때 온 몸에 열이 난다. 그 열기가 있으면 영하의 날씨에도 산 아래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차를 타고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추위를 감당하지 못해서 도로 차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산에 걸어가야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은 경험하기 전에는 역설로 들리지만 경험한 사람에게는 단순한 사실일 뿐이다.
자기부인(否認)은 역설적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불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불에서 다시 나오는 기적을 체험하지 않았는가? 자기부인이 역설적으로 생명의 기적을 맛보게 한 것이다. 자기부인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현대인은 모두가 바쁘다. 자기부인 없이는 주일성수가 불가능하다. 세상에 돈이 넉넉한 사람은 없다. 자기부인이 있는 사람만이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할 수 있다. 자기부인 없이 새벽에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기부인의 삶을 살다보면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시간을 포기하는 주일성수, 돈을 포기하는 헌금생활, 잠을 포기하는 새벽기도는 모두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잃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얻게 되고 자기부인을 통해서 오히려 더 풍성하게 채워진다. 역설적인 축복은 삶의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는 행동원리인 것이다. 2011년 새해에 교단 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대로 사는 운동을 전개해 보자. 역설적이고 신비한 은총을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