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배 목사 (신림동교회 )

어느 목사님이 목회 중에 너무 힘들어 바람을 쐬려고 뒷동산에 올랐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수백 년이나 되었음직한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버티어 서 있는 그 나무가 부러웠단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속이 썩어 텅 비어 있었다. 그는 그 나무를 바라보면서 “너는 목사도 아닌데 왜 그리 속이 썩었느냐?”고 했단다. 많은 목회자들이 속이 썩어 텅 빈 나무와 같이 되고 있으며, 사역을 위해 쏟아 부어야 할 정열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댐은 물을 저장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식수나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댐의 유입되는 물보다 방류되는 물이 더 많을 경우에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목회자일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공급받지 않은 채 성도들에게 은혜만 끼치려 한다면 얼마 되지 않아 고갈되어 탈진(burnout)에 이르게 된다.

탈진(burnout)의 우리말 의미는 ‘몸의 기운이 다 빠져 없어지게 되다’ 이고 영어로는 ‘정력을 다 소모하다’, ‘다 타서 없어지다’이다. 하워드 클라인벨(Howard Clinebell)은 쉬운 비유로 ‘로켓이 모든 연료를 다 소모한 후에 잠깐 동안 그대로 날아가는 상태’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탈진은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열정과 비전을 상실한 채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탈진은 사역에 대한 의욕저하, 사역의 포기, 사역지 이탈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신체적으로는 편두통, 불면증, 식욕상실, 궤양, 고혈압, 소화불량, 알레르기, 심장발작이나 심장마비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타락하거나 자포자기에 빠지거나 자살에 이를 수도 있다.

오늘날 목회자만 탈진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지도자들도 탈진의 위기를 경험하였다. 예를 들면, 모세는 당시 가장 앞선 문명국인 애굽 궁중에서 40년간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으며, 카리스마적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출애굽 할 때 백성들의 불순종과 불평과 다툼으로 인해 자기 사역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탈진을 경험하였다. 엘리야는 아합 시대에 기근을 선포하자 3년 반 동안 그대로 되었다. 그는 갈멜산에 단을 쌓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승리하였으며, 기도하였을 때 다시 비가 내렸다. 하지만 그는 이세벨의 협박을 받았을 때 도망치다가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소원할 만큼 탈진했었다. 또한 위대한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심한 곤란을 당하게 되었을 때 삶의 소망을 상실하는 탈진을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탈진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숨길 일도 아니다. 오히려 탈진을 숨긴 채 탈진의 희생물이 되어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교단의 50대 초반의 목회자들이 탈진의 위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의 돌연사가 많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40대에 돌연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다른 연령층에 비하여 돌연사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50대 초반의 목회자들은 소명을 받고 사역을 시작한지 대략 20여년이 되는 때이다.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목회의 시기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과 극심한 피로와 좌절감 그리고 복음에대한 열정이 식어지는 탈진의 증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탈진에 이르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스트레스(stress)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는 한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을 수는 없다. 한스 셀리(Hans Selye)는 심리적인 손상을 일으키는 ‘나쁜 스트레스’(distress)와 행복감을 주는 ‘유익한 스트레스’(eustress)가 있다고 하였다. 나쁜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 탈진의 원인이 되고, 탈진에 대하여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병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가능한 대로 줄이고, 스트레스를 창조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목회자를 탈진하게 하는 요인은 외부적 요인(external cause)이 있고, 목회자 자신으로부터 발생하는 내부적 요인(internal cause)이 있지만 이 두 가지 요인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interactional cause)하여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모든 사람은 탈진에 빠질 수 있는 잠재성(potentiality)을 가지고 있다. 절벽 아래 구급차를 대기시켜 놓는 것보다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설치하는 것이 더 낫다. 탈진을 목회자 개인의 문제로 방임할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와 교단을 세워가기 위해서 총회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