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한 종교의 절대적 진리란 있을 수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그리고 기독교를 여러 가지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서 동일한 지평선에서 바라보는 종교 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기독교가 직면한 깊은 고민거리 중 하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목적이 분명하고 옳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을 행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었다면, 결과의 정당성은 의심받아야 마땅하다.

어거스틴은 기독교 분파중 하나인 도나투스파(Donatist)에 대항하면서 교회와 칼의 결합을 공식화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본래 종교적 목적을 위해 강제력을 사용하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도나투스파와의 계속된 분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영원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고통이 필요하다며 무력의 사용을 정당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이따금 인간의 선을 위해 강제력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분신인 교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강제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도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그는 황제의 칙령에 도나투스파의 이단자들을 처형하여 모조리 없애라는 내용을 넣어 달라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간청하였다. 이후 1,300년간 그의 간청은 교회가 이단을 처단하려 할 때마다 비극적인 선례가 되곤 했다.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거나 교회의 권위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구세주와 교회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끌어내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고문을 정당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심지어 어떤 무지막지한 고문 도구에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불의한 수단을 동원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비슷한 예는 최근에 개봉한 <머신 건 프리처>라는 영화에 잘 나타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전쟁 때문에 무고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수단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기관총을 든 목사의 이야기다. 알코올과 마약중독에 폭주족으로 방탕한 삶을 살던 칠더스는 가족의 권유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고 회심하여 목회자가 된다. 이후 수단(Sudan)으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그곳에서 소년병과 성노예로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참상을 보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반군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실제로 칠더스 목사는 11년 동안 반군과의 싸움에서 1천 명이 넘는 아이들을 구해냈고,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도 직접 지었다. 그 고아원에는 지금도 300여 명의 전쟁고아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고통 받는 수단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목사가 총을 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예수께서는 세상을 움직이는 데 있어 폭력이나 칼을 동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베드로를 향해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책망하셨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의 나라를 위해 심령이 가난해야 하고, 애통할 수 있어야 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길 뿐만 아니라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가 선을 빨리 이루고 효과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로 인해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저버렸던 결과 잘못된 일에 가담하여 비극이 초래된 경우가 얼마나 자주 일어났던가!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서 효율성으로 대치되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아닌, 세상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선한 결과를 위하여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고, 교회는 예수님이 거부하셨던 유혹에 너무도 쉽게 굴복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유일한 수단은 찬란한 세상적 영광이나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복음이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장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치 있어 보이는 목적을 위해서일지라도 무가치한 수단을 활용하지 않아야 한다.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이 더 많아질 때 우리 민족의 위상을 수치와 좌절로 난파시켰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고통당하는 세월호 참상과 같은 일이 이 땅에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