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성 교수 [성결대 기독교교육]

한국교회는 리더십의 위기에 처해있다. 비록 모든 지도자가 그 대상은 아닐지라도, 소위 리더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왜 리더라고 인정해 주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싸늘한 시선이 교회 안팎으로 늘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슬픈 현실이다. 이러한 리더십 위기의 근본적인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으나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곧 복음을 말하는 자가 복음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 그럼으로써 복음적 리더의 ‘다름’이 보이지 않고, 복음적 리더가 갖추어야 할 ‘신실함’이 충분히 혹은 적절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적 다름’과 ‘신실함’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면 애초부터 올바른 리더십이 형성될 수 없다. 혹 복음적 본질을 벗어나 ‘편법’과 ‘장난’으로 목적을 성취하려고 들이대는 ‘앞잡이’는 될 수 있어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존귀하게 인정받는 진정한 리더(authentic leader)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신뢰란 리더십의 초석이자 골격이며 정점이다. 저명한 리더십 학자 코즈스(J. Kouzes)와 포스너(B. Posner)는 “리더십의 기초는 신뢰성이다. 그게 전부다”라고 단언한다. 베니스(W.  Bennis)는 신뢰(trustworthiness)야말로 성공하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며, 신뢰가 없으면 조직의 재앙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신뢰는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줄때만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동료나 따르는 사람들이 주는 것이며, 이것이 없이는 리더가 될 수가 없다”고 하였다.

호킹은 그의 저서 「기독교 리더십의 7가지 원리」에서 영적인 지도자들이 믿을 만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삶과 신앙의 모든 범위에서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긴 시간 동안의 충성을 보여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영적 리더십」의 저자 블랙커비도 리더십은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신뢰가 있는 리더에게 확실한 권위가 수반된다고 말한다.

오늘날 이 시대가 요구하고 인정하는 영향력 있는 영적리더십이란 전혀 새로운 개념의 어떤 ‘세련된 신세대 리더십’이 아니라, 비록 낡은 개념이지만 이타주의를 추구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신뢰의 리더십’이다. 초대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다. 바울에게서 찾을 수 있는 리더십이 무엇인가 굳이 규정해보라고 한다면, 혹자는 바울의 리더십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역학관계에 반(反)하는 구조를 보인다는 의미에서 ‘뒤집어진 리더십’(inverted leadership)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울의 이 ‘뒤집어진 다름의 리더십’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초월적 은혜로 주어진 사도라는 신분의식’ 속에서 파악하여야 한다. 이러한 바울의 신분의식은 그로 하여금 사람들의 리더이기 이전에,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이라는 ‘초월적 원리’의 규범가운데 자신을 철저히 통제하도록 하였다. 자신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접어두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사명에 충직한 신뢰할만한 종’이 되도록 헌신하게 하였던 것이다(servant first, leader second). 그래서 바울의 행보는 통상적인 리더의 행보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권연경은 바울에게서 성공적 목회 리더십의 어떤 기술을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으며, 리더십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란, 성공이라는 구수한 숭늉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밋밋한 냉수를 한바가지 퍼붓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마음을 사로잡는 관심 있는 한 주제가 되고 있는 리더십의 지배담론이 보다 신뢰할 만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회복을 열망하는 거룩한 열심이자 몸부림의 표징으로 건강하게 논의되고 정착되기를 소망해 본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서로를 향한 불신의 독이 저마다의 부메랑이 되어 결국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아픈 우리사회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의 질적 회복이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교회 역시 복음의 찬물로 느슨해진 정신을 깨워, 십자가 안에서 리더십이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숙고해보는 신뢰회복의 프로세스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자신의 유익이나 입지확보 혹은 야망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먼저 비우고 배제함으로 복음적 리더의 본질을 지켜나가며, 그리스도의 종 된 자신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였던 신실한 바울적 리더십이 무척이나 그리운 오늘을 우리는 보내고 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언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