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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Evil)과 심각한 시대(Serious times)
악(Evil)과 심각한 시대(Serious times)
2017-08-14 오전 10:35:00    성결신문 기자   


차종관 목사 [세움교회 ]

브램 스토커(Abraham Bram Stoker, 1847~1912)의 소설 「드라큐라」에 등장하는 드라큐라 백작은 ‘현대성으로 제압할 수 없는 살아있는 과거의 힘’으로 규정된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지도 않은 존재다. 그의 정체는 모호하다. 

그는 마치 경계선에 선 자 같다. 그는 밤이 되면 자신이 누워 있던 관으로부터 걸어 나와 사람들의 피를 마시며 점점 젊어진다. 그렇게 악마성은 밤마다 세상 곳곳으로 전염된다. 소설 속에는 드라큐라 백작을 죽이려는 네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행동은 거의 ‘사냥’에 비견할 만큼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하지만 드라큐라 백작을 사냥하려고 모인 주인공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환영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에서 드라큐라 백작은 20세기 초의 시대적 합리성의 그림자로 상징된다. 

이 소설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는 이것이다. 이 끔찍한 드라큐라의 힘은 괴이한 행적만큼이나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일종의 ‘매혹’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는 더 이상 ‘악’이라는 주제로 놀랄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엄청난 악의 전형들이 눈앞에 펼쳐져도 그 악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 이유를 악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악이란, 근본적으로 자신의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부분들을 제거하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모호한 이상성,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 시대의 대중은 악의 그 속성 앞에서 그만 영혼과 정신의 무장해제를 당한 셈이다. 그 흡혈귀는 오직 십자가 앞에서만 힘을 잃는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이런 현대성으로 둔갑한 악의 특성에 대하여 말하기를 “포스트모던 문화는... 악에 관하여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는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스산한 특성 중에 하나는 뭔가 속죄할 대상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러니 악을 규명하고, 그리고 그 실체를 파악하므로 거부하고 괴멸(壞滅)시켜야 하는 종말론적인 성경적 세계관은 더 이상 우리 시대에 발붙일 틈이 협소해지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의가 바리새인들 보다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마 5:20)고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의 그 끔찍한 악은 시대성의 눈으로 볼 때 ‘평범한 어떤 것’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복음서에 나열된 악의 실체를 인정하는 보편적 동의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동시에 성경적 의는 그 이해와 인식론적 평가에 있어서 야박한 무엇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 땅의 교회는 끔찍한 의무(?)를 지고 있는 셈이다. 악을 악으로 분별하지 못하는 시대에 교회를 하고(doing church), 교회가 되어야 하는(being church)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임무야 말로 힘겨운 씨름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참으로 ‘심각한 시대(Serious times)’를 살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언제나 반복되는 것은 이것이다. 자기가 자율적 존재이며 자기만이 자기 존재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언제나 ‘악한 자’라는 것이다. 소설 「드라큐라」에서 흡혈귀 전문가인 반 헬싱 박사는 흡혈귀 드라큐라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는 잔인합니다. 아니, 잔인한 것 이상입니다. 그는 마음이 없는 비정한 악마입니다.” 온 밤을 싸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생명을 자신의 분신으로 오염시키는 악의 실체가 이 소설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시대성’이라는 형식은 추상적 표현이겠으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부조리, 부패성, 그리고 파괴성이라는 내용은 소리 없이 거룩한 힘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 매혹을 느끼게 한다. 수용하기 끔찍하겠지만, 결국 악의 결과적 수혜자는 우리들의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막연한, 그러나 모호한 순수성이라는 시대적 신화에 몰두하지 말고 때를(악을) 분별하고 우리의 소명을 구체적인 성경적 세계관으로 채색(彩色)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겠다. 그렇게 할 때에만 ‘나, 너, 우리’라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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