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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이 곧 유식이라
무식이 곧 유식이라
2017-08-25 오전 10:25:00    성결신문 기자   


김희신 목사 새여주교회 

이성주의자들은 이성의 순수성과 온전성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아담이후 타락한 인간이성은 그 한계와 비극적 역사로 종말을 고한다. 믿는 사람의 이성도 자칫 바리새적 정죄의 도구로 바뀌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막거나 선악을 판단하는 비판기능으로 여전히 혼란스럽다. 인간 이성에 무게를 둔 인본주의는 하나님 앞에 불안전한 능력이요, 통일성과 중심성을 잃는 혼란과 무질서 일뿐이다. 

성경은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 인간의 이성과 지혜는 온전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잠 14:2, 고전 1:20, 롬 3:10)

오늘의 성육신 신학이 오히려 교회의 세속화를 가속화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영원한 하나님과 소통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겸손과 신뢰밖에 없다.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의 신앙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결론지어질 때만이 궁극적 실재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은 오직 절대자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나 포스트 모던 이론은 인간 이성의 한계와 종말적 비극을 휴머니즘(인문주의)으로 과대포장하여 신실한 신앙인들을 유혹한다. 

폴 틸릭이 말한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야훼 하나님이시며,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로 이어지는 출애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며 행동하시고 다스리시는 역사의 주권자로 나타나신다. 이성주의의 이중성을 경계하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오직믿음’의 마틴 루터의 외침이 절실하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에 대해선 무식이 유식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며 하나님의 생각과 그 뜻에 도달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사55:8) 어거스틴은 믿음이 있는 무지가 무분별한 지식보다 낫다고 했다. 오늘의 교회적 위기는 결국 믿음의 위기이다. 계시와 이성간의 괴리를 이성과 지성으로 해결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과학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일찍이 사도바울은 복음증거가 인간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라고 했다.(고전 2:1-5)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고전 4:20)

임마누엘 칸트 이후 현대 서양신학의 이성주의적 흐름과 교회의 쇠퇴는 정비례해왔다. 한국교회와 교단은 이성주의를 반이성주의(신앙주의)로 극복해야 한다. 속죄와 은혜, 부활의 영광, 하늘의 소망만이 교회의 해답이다.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반 지성주의와 성경주의를 타계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복음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무식이 곧 유식이라는 칼빈의 말은 오늘의 교회와 기독교지성주의자들에 대한 최후의 경고이다. 

오늘의 신학적 흐름과 교회위기가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복음의 반지성주의를 이성주의로 해석하려하기 때문이다. 교단과 신학교에 지성주의자들과 이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크면 희망이 없다. 그들은 논쟁과 자기방어엔 능하지만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졸(卒)하기 때문이다. 자연주의적 허무 논리도 경계의 대상이지만 독선과 현상학적 도그마에 갇힌 경직된 이성주의 논리는 더욱 위험하다. 계속적인 교회 확장만이 교단의 해답이다. 
2020, 3000교회 운동이 구호로만 그쳐선 안된다. 그것이 예성의 미래요 소망이요 살길이다. 신학교는 교단의 사명자를 키우는 최후의 보루이다. 영적 사관생도들을 키우는 최고의 스승이 신학교 교수다. 

신학교는 무식한 하늘의 용사(천군)를 배출하는 순교자적 집단이어야 한다. 주님을 위해 죽음은(순교적 영성) 유식이 아니라 무식이다. 무식은 믿음이요, 하나님 나라요 생명선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용감했던 것도 무식했기 때문이다. 성령 받으면 누구나 무식해진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맨땅에 헤딩도 무식해야 가능하다. 교회는 무식한 믿음의 사람들이 세운 피묻은 십자가 공동체다. 

카타콤이 무식했고 순교자들이 무식했다. 순교는 무식한 자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용기요 능력이다. 교회가 계시(믿음)보다 이성이 앞설 때 타락하고 쇠퇴했다. 교회가 무식해야 그 생명력은 살아난다.

무식이 곧 유식이라는 칼빈의 말이 맞다.  예성교단도 신학교도 무식해야 산다. 예성의 정체성은 순교적 영성 십자가의 영성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성의 사명은 맨땅에 헤딩했던 초기개척자들의 용기를 잊지말아야 한다. 예성의 브랜드도 존재이유도 개척정신이다. 그 초기정신을 잃으면 짠맛을 잃은 소금이라 버림을 받을까 우려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무식해지자.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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