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관 목사 [세움교회]
사무엘 베게트(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자, 이제 가자(에스트라곤).” “안돼(블라디미르).” “왜?(에스트라곤)” “고도를 기다려야지(블라디미르).” “아, 그렇군(에스트라곤).” 작가는 이처럼 무의미한 짧은 대사와 부조리한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그저 막연히 ‘기다린다’는 상황을 일종의 블랙 코미디로 표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은 기다리는 고도(Godot)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들이 스스로 고도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 왜 그를 만나기 위한 약속을 했는지 조차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린다. 작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된 삶을 막연한 ‘기다림’에 방치된 두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인생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작가는 서로 다른, 그러나 서로를 필요로 하는 등장인물들의 기다림이라는 동일성의 주제를 중심에 놓고 인간의 원형(prototype)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므로 무대는 우리 삶의 축소판이 된다.
기독교 신학의 주제는 ‘기다림’이다. 초림과 재림으로 구성된 신약 성경의 모든 내용은 이 두 주제에 천착(穿鑿)한다. 예수님의 초림(epiphany)과 재림(Parousia)이 형성한 기독교 신앙 사건은 밖에서 안으로의 침투이기에 신자의 기다림은 정당하다. 기다림의 모든 결과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기다리는 존재로써 실존의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고 경험하므로 그 기다림의 의미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기다림을 어떤 행동양식 쯤으로 간주할 때 의미의 파행이 일어난다.
현대인들은 일상의 지나친 과잉으로 현실주의에 매몰되어 살아가므로 자신의 운명 앞에 놓인 결정적 사건(진리 사건)을 종종 지나쳐 버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2천 년 전, 오시는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에 몹시 지친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성경의 기자(記者)들은 분주하게 ‘기다림’이라는 주제와 동시에 ‘깨어있으라’는 각성을 요구했다. 이것은 초기 교회의 신자들이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에 상당히 지쳤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신앙의 결정적 진리 사건으로서의 예수 경험, 성령 경험이라는 본질적 사건을 지나쳐 버리므로 그들은 지쳤다.
결국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기다림을 대신할 무엇을 추구했다.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서 마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노아 홍수 때의 사람들의 형편, 그리고 신랑을 기다리던 10명의 처녀이야기를 통해 긴 기다림 끝에 인생의 결정적 사건을 서서히 상실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이사야 40장은 전환기적 사건을 예언한다. 이후로 이스라엘은 긴 기다림을 참아내야 했다. 분명 희망의 소식을 담은 메시지를 선포했지만, 그들은 마치 오지 않을 것 같은 절망스러운 시간의 담장 너머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하지만 마가복음 1장은 드디어 긴 기다림의 종말을 선언한다.
종말이라 함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어떤 점(點)이 아니다. 오히려 종말이라는 엔트로피(entropy)가 정신적 힘에 종속되는 때이다. 이 성취됨을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써 전한다. 그 기다림의 끝을 그리스도가 오셨음으로 선포하고, 즉각적으로 모든 약속들이 하나님의 희망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성취되었음을 공표한다. 구원의 때가 도래한 것이다.
12월 첫째주일은 많은 교회가 ‘대림절(주현절)’로 지킨다. 4주 동안 교회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기대로 현실을 살아냈던 시간과 역사를 회상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크리스마스’라는 상업주의와 맞물린 채 이 맘 때를 단지 ‘느끼는(feeling it)’ 것으로서의 계절로 대체될 수 없다. 이제 교회는 12월을 낭만적인 소비성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림절은 갈망과 비움, 그리고 기다림의 계절이다.
동시에 이 경건한 계절은 우리의 현실에서 부조리한 조건들과 양상들을 극복하게 하는, 그리고 구원의 열망을 필요로 하는 것을 일깨우는 계절이어야 한다. 광장에서, 공터에서, 그리고 차가운 골방에서 꺼져가는 삶의 희망을 밝혀보고자 애통해 하는 사람들에게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성이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
은혜와 평강이라는 ‘기다림’의 의미와 정당성이 현존하는 한, 비록 광야 같은 우리의 터는 희망의 생산지가 될 수 있다. 그 터가 곧 그리스도요, 그 날이 성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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