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에게 2020년을 주셨다. 주 앞에 사는 사람으로서 용서와 사랑 그리고 믿음과 기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해 놓으면서 한편으로는 신앙인으로서 가장 보편진리적인 것은 ‘소금이요, 빛(마15;13~16)’ 아니겠는가? 세속적 축복도 중요하지만 믿음의 축복도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하고 썩은 이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이는 죄와 타락의 결과일 것이다. 창 6;3을 보면 인간은 이미 창세기에도 부패 해 있었다. 딛후 3;1~5 만세에는 모든 죄악이 극에 달할 것이다. 특히 돈은 만 악의 근원이며, 분명한 것은 거룩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다.
소금은 2가지 기능이 있다. 부패를 막는 일과 음식에 맛을 내는 일이다. 어떤 방법으로 이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가? 소금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세상의 참 맛을 보여줄 수 있다. 여기서 교회가 할 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구원의 메시지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일로서 세상에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빛은 어둠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현재 세상의 상태는 만연한 타락에 물들어 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요 3;19~21). 지식, 교육, 정치에 기대어 보아도 헛수고이다.
오직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소금과 빛처럼 살아야 한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의미가 없고 한번 맛을 잃으면 회복이 불가능하다(눅14;34~35). 신자가 타락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 소금과 빛은 자신을 내어 주고 소거한다. 희생적이어야 하며 남의 이익을 위해 사는 자세,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이어야 한다.
유명한 테니스 스타 아더 에쉬는 ‘왜 하필이면 저 입니까?’라고 하지 않았다. 수혈의 실수로 에이즈를 얻었던 그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면서 자기 자신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마사왕(역하 25;14~16)처럼 왜 세상을 의지합니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놓는다.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어신 것에 늘 감사하여야 한다.
기쁘고 힘들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 할 것이며 해결되지 않고 불만이 있더라도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하나님께 맡긴다는 믿음으로 다짐을 해 놓는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헌신, 희생, 소명 그 어떤 단어도 추상해선 안 된다. 지금의 자리, 지난 많은 일들이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다. 모든 존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방법으로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셨으니 우린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이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위대하듯 2020년에 소금과 빛으로 신앙인으로서의 가치를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