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에 사용될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의 개발
하나님의 섭리로 복음을 든 선교사 언더우드의 발자취를 따라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2000년대 남·북 IT통일의 어젠다가 한창일 때 산업표준도 활발하게 논의된 때가 있었다. 남·북이 서로 다른 컴퓨터 글자판배열도 그 가운데 하나의 의제였다. 일반적으로 남·북의 표준화는 ‘구호’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민간단체인 (사)한국정보관리협회 회장인 조석환 장로(명일교회 장로)는 중국심양, 금강산, 평양, 개성을 넘나들면서 북과 끈질기게 합의하는데 성공하고 남에서 특허청에 기술특허와 상표등록 까지 얻어 최근에 완성품을 내놓았다.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가 바로 그것이다.
통일시대에 사용할 디지털 통신 기기인 「한겨레 통일 표준자판을 갖는 단말기」를 북과 합의해서 발명한 조 장로는 “거창한 통일의 담론보다는 일상생활 안에서 아주 작은 것부터 실행 가능한 것부터 통일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북과 뜻이 일치하여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조 장로는 통일시대에 사용 될 디지털 통신단말기의 글자판은 배우기 쉽고 편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는 훈민정음에 담긴 철학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한글과 조선 글에 대한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 발명의 궁극적인 목표인 만큼 반드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특히 남(南)·북(北) 공동기술 개발에 앞서 정통민족기술의 가치에 대한 재정립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 통신기기인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의 핵심 설계 기술도 휴먼 인터페이스부분에 대한 인간공학적 기술 배려와 글자판의 물리적 버튼, 글쇠 배열의 편리한 글자판 입력이 논리적이고 최적성에 맞추어야 된다고 한다.
연세대학교가 발행한 백년화보집(1885-1985)과, 국립한글 박물관의 도록(2015)에 의하면 조선민족이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정신을 길러 주어야 하는데 이 방법은 교육뿐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최초로 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조선 크리스천대학을 설립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언더우드는 당시 조선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인 ‘조선글’(남은 해방이후 ‘한글’이라 불렀고, 북에서는 ‘조선글’ 그대로 부르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이 소리글자로서 자음과 모음은 물론 받침이 과학적으로 창안되어져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끼고 ‘조선글’받침을 옆에 붙이면 영어와 같이 조선글 타자기 기계화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의 형 존. 티. 언더우드(John T. Underwood)가 운영하는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에 자신이 발명한 조선글 횡서 가로 풀어쓰기 활자 타자기를 개발하여 조선글 글자판타자기 기계화를 시도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아쉽게도 그 시제품이 남아 있지 않다.
당시 사회의 환경은 한자(漢子)와 조선글을 병행하여 사용 하는 것이 일반사회적인 관습 이였기 때문에 조선글 모아쓰기가 유리하게 작용하던 때라 조선글 횡서 풀어쓰기는 생소한 것이 어서 일반대중에게는 타자기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상조에 밀려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이 설립한 조선 크리스천 대학의 최초로 ‘서지(문서작성)’교과목을 편성하여 학생들이 ‘인자(타자)교과목’ 즉, 타자연습을 하는 광경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활자 횡서(가로 풀어쓰기)발명으로 한글타자기 글자판 기계화은 물론 한글타자 교육의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 인간공학을 고려한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 발명
조 장로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고향인 주실 마을 출신이다. 성결교회 장로이면서 성결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평택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했고 현재는 과학기술 정보통신부 산하 (사)한국정보관리협회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조 장로가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 제작 사업을 북에 제안할 당시 남에서는 제15대 문민정부 김대중 대통령의 ‘국란과 재도약의 새 시대를 엽시다’란 내용과 대학입시에 컴퓨터 교육을 포함하고. 벤처기업 등을 적극지원 하여 ‘지구상에서 컴퓨터 가장 잘 쓰는 정보대국·기술강국 육성’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취임사에 힘입어 정보기술이 많은 발전을 하던 시기였다.
동시에 북도 컴퓨터의 높은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글자판기초 교육을 철저히 실시하여 하드웨어(h/w)기술과 소프트웨어(s/w)기술 교육 그리고 조선글 혹은 한글의 정보화는 세계적인 수준이였다.
조 장로는 급격한 남, 북, 미의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인에 기쁨과 환희 그리고 희망을 가져다줄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고 크리스천들이 기뻐할 일이며 이러한 시류속에서 남·북이 합의한 통일 단말기 연구 사업 또한 통일의 디딤돌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조 장로는 중국 심양과 평양 그리고 금강산과 개성을 오가며 북(北)과 상호신뢰의 원칙의 바탕위에 합의한 디지털 통신 단말기의 글자판인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를 발명하는데 성공한 것은 분단 이후 통일을 이룬 첫 번째 사례이다.
조 장로는 50여 년을 한글 타자기 글자판 혼란기에서 부터 컴퓨터 글자판에 이르기 까지 한글 타자 글자판 표준연구는 물론 타자교육의 수많은 연구 활동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스마트폰 난개발로 50년대 한글 타자 글자판 난립의 비슷한 현상으로 사회가 혼탁해지자 스마트폰을 천지인으로 표준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여 통일하는가 하면 2014년 새로 설립된 국립 한글박물관이 편찬하는 도록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한글 기계화와 정보화 부분에 불후의 업적을 남기기도 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산업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국가컴퓨터자판 위원장으로 10여년을 봉사하기도 했다.
2007년 정부는 이 업적을 인정해 국민포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이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기회로 조 장로는 믿고 있다.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험악한 비탈길, 그리고 밑이 않보이는 아슬 아슬한 험악한 낭떠러지에 펼쳐진 ‘차마고도’의 티벳트의 무역상처럼 수많은 고뇌. 질투. 시기를 소망으로 견딜 때가 있었다. 이럴때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장 9절) 말씀을 붙잡고 믿으면서 연구한 결실이 오늘의 기적을 낳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여기에는 아내 정숙 권사의 한없는 희생과 기도와 물심양면의 내조의 힘이 있어 가능한 것이 였다고 조 장로는 회상하면서 동생 조석팔 박사(전 성결대학교 부총장) 등 가족의 도움도 매우 컷다고 회상한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지루하게 끌어오던 한글 글자판논쟁이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발명을 계기로 종식을 고하게 되었다. 원인은 왼쪽 손과 오른쪽 손의 대칭구조를 조사하여 보다 힘이 강한 오른쪽 손이 글쇠를 더 많이 입력할 수 있도록 빈도 율이 높은 자·모를 해당 키탑(key top)에 배열하고 새로 배열된 간단한 기능 글쇠·버튼 조작으로 2.3벌이 자연스럽게 한 글자판에서 입력이 가능해 비교우위의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운영체제(OS)도 컴퓨터 글자판 뿐 만 아니라 스마트 폰인 안드로이드 글자판은 물론 아이폰, 맥, 윈도즈, 리눅스에 적용이 가능하도록 다양하게 개발하였다고 한다. 남(南)의 한글 2벌식 표준 글자판이나 북(北)의 조선 국규 2벌식 조선글 글자판을 대신해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기술적인 우월성을 제공함은 물론 이제까지 남·북에서 발명된 여러 종류의 한글 글자판의 성능을 비교·검토하고 신속 정확한 처리를 위한 효율성과 새로운 시장에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경제성도 함께 비교 검토하여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그 타당성이 충분하게 검증될 수 있도록 하였다
공교롭게도 1886년 기독교 명문인 연세대학교의 설립자인 미국인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린 것은 우리민족에게 기억 되지만, 최초로 조선글 횡서(풀어쓰기) 타자기 활자 발명과 거기에 따른 조선글 타자 글자판 교육을 실시한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사실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초기에 디딤돌을 놓은 한글 횡서(가로쓰기) 타자 활자의 발명이 발판이 되어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를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진리·자유를 추구하는 연세인의 정신으로 반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쪼록 이 역사가 계기가 되어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에게 영원한 희망과 용기를 북돋어 주는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 모든 섭리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조 장로는 믿고 있다.
끝으로 남·북이 미래에 함께 사용할 「한겨레 통일 표준글자판을 갖는 단말기」는 6.25 한국 동란이후 통일한 첫 번째 사례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통일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또한 간절하다. 모쪼록 많은 기업과 개인이 북에 키보드 보내는 운동에 동참해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글자판을 많이 설치하여 사용하여 주기를 바라고 기업에서는 컴퓨터 글자판을 제작하는데 도움을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