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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故 영암
내가 만난 故 영암
2024-05-13 오후 1:37:00    성결신문 기자   


김소암 목사 [운양교회 원로]

1959년 부산성서신학교 재학 중에 서울신대에서 열리는 전국교역자 하계수련회에서 김응조 목사님의 설교에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김응조 목사님, 1962년 9월 20일 성결교신학교 입학 면접 때 입학 동기와 사명에 대한 질의에서 “나는 주로 영접한 후 지시를 받아 목회를 하고, 부산성서신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2교회를 설립하였다”고 답했다.

성결교신학교가 서울 충정로에 있는 목사님의 자택이었는데 1층은 가족들이, 2층은 학생 50명이 방 4개에 낮에는 강의실로 밤에는 침실로 사용하였다. 나는 학번 62001로서 개교 처음 1 번 스타가 되어 학교 교무행정, 기숙사 관련된 일을 도왔다. 

 낮에는 수업에 열중하고 밤에는 인왕산이나 삼각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돌아오는 어느 날 김응조 목사님이 오늘 오후에 함께 갈 곳이 있으니 가자고 하셨다. 찾아간 곳은 중앙청 근처 아담한 한옥집인데 하순복 권사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권사님이 정오 12시에 다락에 올라가 기도 중 비몽사몽간에 김응조 목사님이 청년 한 사람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오는 것을 보았고, 김 목사님이 찾아오신 사유를 들으신 즉시 내게 등록금, 학비와 생활비를 졸업할 때  까지 기쁨으로 돕겠다고 하셨다.
김응조 목사님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단대리에 교회를 개척하라고 하셔서 3년간 교회를 흙벽돌로 건축했다. 

성결교신학교 졸업반에 예산 신암교회를 개척 건축하고, 충남 서산 인지교회에서 6년간 목회 중 김응조 목사님을 초빙하여 부흥회를 통해 180명의 결심자와 12명의 목사가 배출되었다.

1972년 김응조 목사님은 전북 삼례교회 시무하는 나를 교단총무로 불러 교단 1, 2차 파동으로 분열되어있는 교단을 수습하라고 명령하셔서 교단의 정치를 하게 되었다.

 총무의 바쁜 일정 속에 운양교회를 수습하는 중에 담임목회자가 되고 목사님의 권유로 단국대학원에 국문학을 전공하게 한 후 졸업과 함께 성결대학교 전임강사로 기독교교육과를 신설하여 기독교교육학과장을 임명하셨다. 전임강사 급여는 학교건설자금으로 저축하는 것이니 통장과 도장은 경리과에서 관리하였다.

1970년 초경 김응조 목사님은 학교 권위와 본인의 위상을 위해 미국 훼이스신학대학원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셨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총회 시 탄핵의 결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서명날인 3분의 2가 넘은 지점에서 법제부장이 서기인 나에게 주며 읽어보고 서명날인 하면 즉시 폐회 직전에 학장 파면 결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 서류를 받아서 내가 급히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여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렸다. 

그리고 나와서 회의장에 들어가 소리소리 지르며 김응조 목사님이 박사학위 받은 일로 탄핵하겠다는 사유를 말하며 김 목사님의 제자들이요 후배들이 교단과 학교를 위해 헌신하시는 목사님을 탄핵하자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난동에 총회장이 폐회를 선언하였다.

1978년 총회에서 총회장 선거가 밤 12시가 지나도록 투표했으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산회 되었다. 총회 임원회가 없는 총회 행정이나 신학교의 교무행정 교육부와 다른 기관에 보고사항의 결재를 하지 못함으로 김응조 목사님이 원로들과 의논하여 임시총회를 개회했다. 목사님은 개회설교 시 “총회장은 성결교신학교 학번 1번인 김소암 목사를 천거하니 여러분들 찬성하시는 이는 아멘 하라”고 하여 회원 전원 기립 박수하여 57대 총회장으로 취임하게 하였다.

김 목사님과 개인적인 관계는 사제지간으로 그간 많은 사랑과 보살핌으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총회와 학교 그리고 사적으로 서울에 올 때는 농촌의 특산물을 가져오면 사모님도 목사님도 오랜만에 아들 만나듯 반겨주시고 항상 식사를 목사님과 겸상해주셨다. 

저녁이면 오랫동안 살아오신 일들을 말씀하시고 잠자리도 마련해 주셨다. 김 목사님께서 개인적으로 부탁하신 것은 영암선교회 관리문제였다. 내게 책임지고 운영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교회와 총회, 학교를 위해 일 하며, 영암선교회는 총회에서 관리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나는 디모데가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섬겼듯이 한평생 김응조 목사님을 영적 아버지로 존경하고 곁에서 섬겼다. 엘리야가 승천할 때 엘리사가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시여”(왕하 2장) 외치시듯 나도 내 아버지 김응조 목사님이시여 예성 총회와 성결대학의 아버지시여 목사님의 지식과 지혜와 능력과 권능을 내게 주시옵소서 기도하며 살아왔으며 학교에 올 때마다 목사님의 사랑의 부드러우시고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다. 예성 총회와 성결대학교를 사랑하여라. 말씀하신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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