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남 목사(서울평안교회)

성지순례에 관한 책을 수번씩 탐독하고 기도하며 준비하다가 드디어 이스라엘 순례의 길(6월 8일~18일)에 올랐다. 패키지가 아닌 지도와 책을 손에 들고 얼마쯤은 모험과 고생을 각오하고, 기노신 목사(서산지방회)와 배낭을 메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나오는 투어버스가 아니라 수십 명이 동행하는 단체여행이 아니라. 홀로 예루살렘시내 버스를 갈아타고 때론 걸어서 성안 골목과 성밖을 샅샅이 누볐다.

무슬림과 유대교인과 팔레스타인과 그리고 타국인들과 부딪히며 같은 숙소에서 밥해 먹고 한방에서 자고 함께 예배드리고 얘기하며 밤을 지새우며 그야말로 흔하고 편한 여행이 아니라 순례의 길을 삼으려고 애초부터 출발했고 그렇게 보냈다. 갈릴리 호숫가를 걸어서 자전거타고 맞은편에 건너가 지나가는 차를 세워 얻어 타면서 팔복교회의 언덕 산등성을 홀로 걸어내려 오면서... 나사렛까지 버스타고 말귀를 잘못 알아들어서 바가지 택시타고, 베들레헴 체크포인트에서 팔레스타인과 함께 검문 받다가 2시간동안 억류도 당해 보았다. 

베드로와 바울의 선교지였던 지중해변 가이사랴까지 기차를 갈아타고 모래 땡볕을 지나가며 남김없이 유적을 돌아보기도... 이스라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유대 광야지역 마사다에 올라가 사해를 내려다보면서... 삭개오의 뽕나무가 있는 여리고, 흔적만 남아있는 여리고성,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으셨던 시험산, 아찔한 케이블카 타고 오르면서 그렇게 순례했다. 아! 주님의 체취는 간데없고 이방인과 잡상인들만이 판치는 그러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주님의 숨결과 세미한 음성을 듣고 싶은 마음으로 이스라엘 남쪽, 북쪽과 서쪽 땅을 밟아보고 돌아오니 아직도 예루살렘 성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아른거린다.

이제 서투른 이 글이 성지를 향해 떠나고 싶지만 선뜻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는 분에게 조금이나마 정보와 용기를 주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성지를 가는 것은 직접적인 신앙생활이다. 성지를 가는 것은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위한 투자이다.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크다고 말한다. 그것은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일뿐이다. 성지 여행은 투자한 만큼 신앙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성지 여행을 다녀왔어도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일반 관광객과 같은 시각으로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성지순례를 가보고 싶었지만 사실을 고백하건데... 누가 그렇게 말한 것이 나를 움직였다. ‘성지순례는 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간다’고 나는 지금도 그 말에 감사하고 있다. 나의 첫 준비는 꼭 가보리라는 의지를 갖는 것과 함께 관련된 책을 사서 읽고 이스라엘 땅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라고 했던가? 어느 날 총회홈피에서 성지순례 동반자를 찾는다는 기 목사님의 글을 읽고 드디어 무작정 가겠다고 통보하자 정말 출발하도록 경비문제가 해결되는 은혜가 주어졌고 급기야 일정을 잡고 항공티켓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전의 나처럼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 꿈을 그려라. 조만간 이스라엘 땅을 밟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은 여행사에서 준비한 일정과 코스에 따라 움직이는 단체여행(패키지)을 다녀왔다. 이는 돈만 내고 짐만 챙겨서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이었다. 이런 여행은 말 그대로 여행이지 순례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왠지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바로 배낭여행이다. 이유를 말한다면 돈만 주고 따라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가까운 곳이라면 언젠가 가보고 싶을 때 또다시 쉽게 갈 수 있지만, 이스라엘은 쉽게 갈 수 없는 그 먼 길인데 이런 성지를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간다는 것은 너무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따져보고 내가 계획을 세워서 누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은 대로 걸어보고 싶었다. 결국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 책과 지도를 손에 들고 서투른 영어지만 직접 부딪혀보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었다. 또 다시 배낭을 메고 여행길에 오르고 싶다. 함께 순례의 길에 나서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