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철 목사 [청지기교회]
정체성에서 사명이 나온다. 즉,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으로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가 정해진다는 뜻이다.
나는 신학생 때부터 무언가 주는 사람이라고 여겨서 힘들었다. 선교회를 이끌 때에는 후배들에게 무언가 줄 수 있어야 했고, 목회자가 되어서도 늘 성도들에게 무언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부족한 사람이 별것도 없는 데에서 끌어내려니 힘들었고, 늘 고갈을 경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왔다.
“나는 주는 자가 아니라 전하는 자”라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한계가 정해진 나의 창고에서 무언가 꺼내서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한없는 사랑과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단지 전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든 데에는 내가 섬기는 교회가 청지기교회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나의 시간, 소유, 관계, 생명마저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용해 주세요.”라고 고백해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때부터 카톡 대문 프로필도 그렇게 바꿔서 지내오고 있다. 이렇게 바뀐 후로 변한 것들이 있다. 먼저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부족하지만, 주님은 풍족하시고, 나는 연약하지만 주님은 강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부어서, 붙여서, 고쳐서 써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주려면 아깝기 마련이고, 생색도 내기 쉽게 되는데, 어차피 주님의 것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전하는 자의 보람 정도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둘째는 전하려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이 아무리 풍성하셔도 나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그 풍성함에 잇닿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바라보고, 또 말씀 속에서 어떻게 그 음성을 들려주실지 기대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고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하나님 일 하는 사람이니 어련히 알아서 필요한 것은 다 주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없는 것은 아직 주님의 때가 아니기 때문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구하지도 않고, 없는데 있는 척 할 필요도 없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어차피 내 것이 아닌 것을 기꺼이 나눌 마음이 생겼다.
이제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눌 것이 점점 많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날에 비해서 경험도 많아지고,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아졌다. 예전에 비해서는 더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얼마든지 전하실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저 내가 할 일은 언제든 편하게 쓰실 수 있는, 손에 익숙하고 잘 맞는 깨끗하고, 편안한 도구요, 통로요, 매개체가 되는 일 뿐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나를 부르신 분께서 놀라운 분이시니 앞으로 나를 통해서, 또 우리를 통해서 전하실 새로운 일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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