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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묵 목사 [신림제일교회]

‘살림살이’라는 말이 참 좋다. 누군가는 천대하듯 “살림살이나 잘해!” 하지만, 이렇게 천대 당할 말이 아니다. 살림살이의 사전적 의미는 ‘한 집안이나 단체 따위를 이루어 살아가는 일’을 일컫는다. ‘살림살이’는 ‘살리다’의 명사형 ‘살림’과 ‘살다’의 명사형 ‘살이’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살리는 삶’이 살림살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죽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사는 삶이라니 말이다.

예수님의 인생은 살림살이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전 인생을 드리셨고 마침내는 기어이 생명까지 내주셨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살았고 그로 인해 살아간다. 예수님의 삶이야말로 살림살이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살림살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작가의 두 번째 소설 『파친코』가 큰 화제가 되어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시대와 해방 이후의 재일교포의 수난기를 다룬 작품으로 과거 일본의 잔악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 작품이기에 일본이 드라마 제작을 극구 반대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님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이민진 작가의 책은 기독교의 색채가 진하게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이삭, 노아, 요셉, 솔로몬 등으로 등장할 만큼 숨기지 않고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기독교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다음의 몇 문장으로 시작된다.

“1910년 일본은 제국을 확장하며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일제 치하에서 많은 한국인이 생계를 잃고 고향을 뒤로하고 외국 땅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가족들은 견뎠다.”

말 그대로 이 시대는 견디고 견뎌야만 살아 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위의 어느 누구 하나 돌볼 겨를 없이 치열하게 생존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신앙이 별거겠는가? 신앙은 버티는 것이다.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는 “기독교인인 작가가 이 작품을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연관시킨 것 같다”면서 “고난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낸 출애굽 사건을 작품에서 일제강점기 상황으로 녹여냈다는데 기독교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그저 견디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일까? 작가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더 요청한다. 주인공인 선자는 당시에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처녀로서 아이를 가진 것이다. 당시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그녀뿐 아니라 그의 집안 전체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을 만큼 회복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선자의 인생을 살려낸 사람이 있다. 백이삭 전도사다. 선자의 집에 하숙으로 들어와 살고 있던 백이삭 전도사는 이 상황을 알게 된 후 선자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단한다. 목사의 길을 준비하던 백이삭은 한 여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수치를 뒤집어쓴다. 반대했지만 아들의 요청을 기어이 받아들인 아버지는 두 사람의 혼인을 허락하며 하나님께서 속죄의 기회를 주시길 기도한다.

속죄의 기회. 바로 살아날 기회이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이다. 목사의 길이 별거겠는가? 누군가를 살려내는 일 아닌가.

요셉이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했기에 예수님이 태어나실 수 있었던 것처럼 전도사 백이삭은 처녀로서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잉태한 김선자를 품는다. 그리고 그가 회복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다. 누군가의 인생을 살려주는 것, 그리고 더불어 살아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