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구 목사  [남산교회]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야외 캠핑을 가면 주로 해먹는 음식이 고추장찌개입니다. 채소나 두부를 고추장 국에 넣어 석유 버너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면 찌개 끓는 냄새가 캠핑장 주위에 쫙 퍼지고 그 때 부터 벌써 입에는 군침이 돌기 시작합니다.

끓는 찌개 옆에서 다른 친구들은 둘러 앉아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고, 어떤 친구는 일어나서 꼽추 춤을 주기도 합니다. 옆의 텐트에 여학생들이 있으면 춤을 추는 녀석은 여자애들 쪽 만 보고 흔들어 대곤 합니다. 그러나 그런 여흥에는 관심 없다는 듯 묵묵히 끓어오르는 찌개 냄비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날 식사 당번을 맡은 주방장입니다.

그러다가 가끔 냄비 뚜껑을 열었다 덮었다 하면서 찌개 끓는 속도를 조절합니다. 고추장찌개는 마치 폭발하는 화산과 같이 김을 뿜어내며 부글부글 솟아올랐다가 뚜껑을 열면 다시 사그라지곤 했습니다. 주방장은 화산을 잠재우는 듯, 신중한 표정으로 버너 불을 조절하기도 하고 숟가락으로 한 번씩 찌개를 저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결심하였다는 듯이 꽁치 통조림을 뜯습니다.

그리고 끓는 찌개에 꽁치 덩어리를 과감히 집어넣습니다. 통조림에서 고기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털어 넣는 주방장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기까지 합니다. 처음부터 통조림 고기를 넣으면 너무 익어서 고기가 흐물흐물 해지기 때문에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넣어서 찌개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 주방장으로써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통조림의 고기, 왕건이가 어디로 갔느냐는 것입니다. 분명히 통조림에서 커다란 꽁치 덩어리가 찌개로 들어가는 것을 친구들이 다 봤는데 막상 찌개를 떠먹을 때는 채소나 두부만 잡힐 뿐 고기는 좀처럼 걸리지 않습니다.

숟가락으로 낚시를 하듯 꽁치를 건져 올리려고 휘휘 저어 보아도 부스러진 꽁치 조각만 떠오를 뿐 고기 왕건이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때서야 친구들은 주방장의 흐뭇해하는 미소의 얼굴을 쳐다보게 됩니다. 그러면 찌개를 끓인 주방장 친구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맛보기가 좀 과했나?’ 라고 왕건이가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이 주방장의 특권임을 즐거워하며 말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목사는 찌개를 끓이는 주방장과 같지 않은가 싶습니다. 주방장이 찌개 곁을 떠나지 않고 불 조절을 하고 뚜껑을 열었다 덮었다하며 지켜보듯이 목사는 한 주간 내내 설교 본문을 떠나지 못하고 말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읽고 또 읽고, 다른 번역본으로도 읽고, 묵상하고 본문의 뜻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궁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묻기도 하면서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러다가 말씀의 핵심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마치 주방장이 꽁치 통조림을 뜯어 고기 왕건이를 집어넣듯 과감히 설교의  결론을 내립니다. 그 때, 주방장이 고기 왕건이로 찌개 맛을 보듯, 목사는 말씀의 영감을 성도들 보다 먼저 맛보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선택을 결정하는 인도자가 됩니다.

주방장이 자기가 끓인 찌개의 맛에 감탄할 때,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내어 놓을 수 있듯이, 목사도 자기가 작성한 설교에 먼저 능력과 감동을 받아야 성도들에게 확신 있게 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듣는 성도들을 위해 전하는 목사에게 먼저 말씀의 왕건이를 맛보게 하십니다.

성도들 때문에 목사는 항상 말씀의 핵심을 가장 먼저 먹는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이 설교자가 가지는 특권이며 축복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을 ‘빚진 자’ 라고 했는가 싶습니다 (롬 1:14).

성도들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장 먼저 먹게 하시니 나는 성도들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주방장도 친구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목사나 주방장이나 이런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행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