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헌신은 있는 자보다 없는 자가 앞장서는 경우가 많다. 있는 사람은 더욱 인색해지고 남의 것마저 자기 것으로 하려는 욕심에 정복되기도 한다. 범죄한 다윗 왕에게 나단 선지자가 책망하며 인용한 예화에서도 밝혀지는 바와 같다. 양과 소가 많은 부자가 자기에게 찾아온 손님을 위해 자기 양 잡기를 아까워하며 가난한 집의 하나밖에 없는 양을 뺏어다 친구를 대접했다는 예화 말이다.
성전의 헌금궤 곁에 앉으셨던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연보궤에 헌금하는 것을 보신 후 제자들에게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헬라 화폐의 최소 단위인 동전 두 닢 넣은 것을 보시고 가장 많이 헌금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 부자들은 풍부한 중에 일부를 드렸지만 이 과부는 자기의 재산 전부를 드렸기에 그의 헌신과 희생을 칭찬하신 것이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가 서울에서도 알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압구정동에 개척교회를 시작했는데 격려보다는 조롱과 함께 주제파악을 하라는 핀잔이 더 많았단다. 이때 전도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이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하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면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서원하는 기도를 하며 목회에 전념했다. 교회가 점점 성장하여 신자들도 많아졌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벗어나게 된 어느 날 강단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네 교회가 언제 재정적인 독립이 되느냐는 물음이셨다.
즉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그 다음 주일에 자기가 선교사로 나가겠노란 선언을 했단다. 자기 교회에 출석하는 회사 사장들과 부자들이 선교의 동역자들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반응은 뜻밖이었단다. 부자들은 전도사가 밝히는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못마땅해 하며 외면하는데 식모살이하는 여자 청년이 가족들의 생활비로 보내려고 모아놓았던 돈을 선교헌금이라고 들고 왔고, 자식들 공부시키려 식모노릇을 하는 노친네가 역시 헌금을 하더란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며 마게도냐 교회의 신도들이 보인 모범적인 헌금태도를 칭찬한 일이 있다. 환란과 시련이 많았지만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한 일이다.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신한 일을 기억하며 감사하였다. 가난 그것도 극심한 가난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기쁨이 신자들로 하여금 넘치는 연보를 하게 한 것이다(고후8:1-5).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를 넘기고 가난을 벗어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으니 더더욱 넘치는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아직도 시련 중에 있고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경우일지라도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 가운데 자원하는 헌신과 봉사가 넘쳐야 한다. 생각하는 일(Think)과 감사하는 일(Thank)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어떤 환경에서라도 감사하며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