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시대가 끝날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이 종말의 순서이다. 혼돈과 반역의 시대를 정리하고 의와 평화의 왕국을 건설하시기 위해 다시 오신다. 해가 뜨기 전 미명(未明)의 때가 가장 어두운 것 같이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의 세상에는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며 감사가 없고 불순종과 원망이 가득하니 이러한 현상이 바로 재림의 징조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계시의 내용이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에 소재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되어 있다. 일곱 교회는 동시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교회들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예언적으로 보면 초대교회로부터 예수님의 재림 직전의 교회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교회는 라오디게아교회로 대표된다. 라오디게아교회의 신앙상태는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상태이며 물질적으로는 부요하나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모습이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때를 맞고 있다. 예루살렘에 닥칠 재앙을 내다보며 안타깝게 눈물로 예언했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셨지만 결국은 예루살렘이 불타고 성전을 파괴되고 말았다.
라오디게아교회는 곧 현대교회의 모습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자기의 의로움을 하나님께 자랑할 사람이 없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마저도 하나님 앞에 설 때 그의 옷은 더럽고 사탄은 그를 대적하며 하나님께 참소하는 모습이 보인다(슥3:1-3).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부정함을 깨닫고 회개하던 이사야가 허물과 죄를 용서받았을 때 그는 인간의 모습을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라오디게아교회는 자기가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하고 있다. 실상은 토함을 받아야 할 만큼 추하고 더러운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라오디게아라는 말 자체가 ‘백성의 정의’(라오스=백성, 디케=정의)라는 말인데 지도자의 권위가 무시되고 대중의 큰 목소리가 정의라 하는 현실 속에서 재림하실 주님께서 가까이 곧 문 앞에 오실 때가 다가왔음을 실감케 된다(계3:20).
두려움 속에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던 엘리야는 강한 바람이나 큰 지진, 불 가운데서가 아니라 고요한 가운데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자신과 민족의 죄를 고백하며 나라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던 다니엘처럼 종말시대를 살고 있는 신자들은 자신의 부정함과 죄를 회개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진정한 애국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강같이 흐르는 공의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