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덕준 목사 [독일교회 원로목사]
한국의 대다수 교단들이 헌법에 담임목사 정년을 70세로 정하고 있다. 정년이 되면 교회는 목회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동안의 공로를 치하하며 명예롭게 은퇴하게 한다. 그런데 은퇴 후에 원로목사와 후임자 사이에 갈등과 불협화음으로 교회가 소란해지고 교인들이 상처받아 방황하는 일이 생기는 게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잡음 없이 세대교체를 이룰 수 있을까? 세대교체 후에 교회가 더욱 은혜롭게 부흥하고 성장 할 수는 없을까? 이는 한국 교회 모두의 관심사요 숙제이면서 기도제목이기도 하다. 세대교체 후에 진통을 겪는 교회들을 보면 대개 대형교회이거나 아니면 담임목회자로 개척하고 은퇴하는 경우이다.
교회를 개척하여 3-40년 이상 시무하다가 은퇴하는 경우에는 은퇴한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여전히 담임자인 줄로 아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에서 열까지 쓸고 닦고 가꿔온 교회이니 남다른 애착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신자 하나 전도해서 세례주고 가르쳐서 직분을 맡겨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같이 웃고 울면서 서로 섬기고 감싸주며 정든 세월 속에 만들어 온 추억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데 하루아침에 내려놓기가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내려놓아야 한다. 은퇴했으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그동안 내가 개척하고 내가 목회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것이고 나는 주님의 종으로 도구로 쓰임 받은 것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은퇴했으면 물러서기를 잘 해야 한다. 한걸음만이 아니고 천 걸음 만 걸음 물러서야 한다. 그리고 후임자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한다. 소신껏 일하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실수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 부족해 보여도 간섭하지 말고 틀려보여도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담임목사를 신뢰해야 한다. 원로에게는 연륜과 경륜 이상으로 무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로로써 자문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오로지 후임목사가 정중하게 자문을 요청 할 때이다. 원로의 자문을 받아들이고 않고는 후임 목사의 몫이다.
성경에 보면, 지혜의 왕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대를 이어 왕이 된다(왕상 12:1-20). 어느 날 이스라엘 회중이 왕에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고역과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라고 했다. 르호보암은 아버지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왕이 만일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라고 자문해 주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자문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포악한 말로 대답하였다. 그 결과 백성의 마음이 왕에게서 떠나고 국가는 양분되었으며 남부 유다 한 지파만을 다스리는 왕으로 부끄럽고 불행한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그 때 죽은 솔로몬왕이 다시 살아나서 아들이 하고 있는 꼴을 보게 된다면 어떠했을까?
“내 탓이다. 다 내 탓이로다. 내가 잘못 키우고 가르친 까닭이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게 지혜로운 아비의 마음이니까.
어떤 분들은 목회를 잘 마치고 나서 시험에 빠지는 분들이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시험에 들지 않기를”기도해야 한다. 은퇴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시험이 있는데 그것은 ‘섭섭이’이다. 바쁘고 다양한 목회사역의 현장에서 하루아침에 손을 떼고 가족처럼 지내던 성도들과 멀어지면서 허전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못해 우울하기까지 한다. 이때 찾아오는 섭섭이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시험에 들게 되고 마음과 몸에 병을 얻게 된다. 그런데 지혜로운 원로들은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나눈 사랑을 크게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슬기롭게 이겨낸다. 졸업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인 것처럼, 은퇴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는 노후는 더욱 아름답지 않겠는가?
얼마 전 친구 목사의 은퇴식에 축사와 권면을 부탁받고 ‘삼부(三否)체’ 할 것을 권면하였다. ‘보고도 못 본체 하고, 듣고도 못 들은 체 하고, 알고도 모르는 체 하라.’
원로는 교회 분란과 갈등의 중심에 앉아 있지 말고, 은혜와 평강의 정점에 서 있어야 한다. 원로의 앉고 설 자리를 잘 분별하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오직 예수, 교회가 먼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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