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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 목사 [청지기교회]

어느덧 동네 공원에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 잎이 샛노래지다 못해 듬성듬성 가지를 비우고 있다. 이제 가을을 거의 끝으막에 두고 여러 가지 소회에 젖는다.

지난 시간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꽃단지를 개방했을 때 아내와 부모님을 모시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가다 보니 군데군데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껏 멋을 낸 이들이 서로 의지하고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사진으로 봤었던 부모님의 젊었을 때 모습이 떠오르면서 참으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젊은 연인들을 보며 “나와 아내도 저럴 때가 있었지, 그리고 시간이 또 흐르면 우리도 지금 옆에 계신 부모님처럼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며 이 모든 것이 한순간의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너무나 빨리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요,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시지 않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이요,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한 마음들이었다.

11월 셋째 주 추수감사절을 앞에 두고 금요기도회를 진행했다. 다니엘 기도회의 영상으로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인도하는데 그만 앞에 진열된 채소, 과일들을 보고 회개가 터져 나왔다. “이 녀석들은 때를 탓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열매를 다 맺어 이렇게 하나님께 드려지는데 과연 나는 어떤 열매를 맺었나?” 자책이 되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핑계로 그냥 하루하루 지내온 것은 아니었나, 나태와 게으름으로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어 보이는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해 보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나, 가정이나, 나 개인에게도 항상 신실하셔서 부족함 없이 지나게 하셨는데 막상 나는 별로 드릴 것이 없더란 말이다.

분명 지난여름 비도 너무 많이 왔고, 태풍도 여럿 지나갔는데 채소와 과일들은 여전히 주님의 제단을 빛내고 있었다.

이제 이 시간도 지나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게 된다. 여전한 난국 속에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겠나 하며 시작했던 2020년도 벌써 다 지나고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남겨두고 있다. 내가 목사로서 설교하면서 배운 최고의 황금률은 “빨리 시작하고, 자주 공략하라!”이다.

이것은 삶의 전반에도 잘 적용된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시작하고 더 자주 공략해야겠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부모님과 더 자주 좋은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옆에 두신 소중한 사람들을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하겠다. 그리고 아직 남은 기회가 있을 때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씨앗들의 싹을 틔우고, 부지런히 길러서 꼭 좋은 열매를 주님께 안겨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