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시위 투쟁가가 아니라 평화주의자였다. 나라를 전복하려 꾀하지도 않았고, 군중들을 향해 선동도 하지 않았다. 정치를 고민하며 시정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라”고 하셨지 내가 맞았으니 대항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베드로가 흥분하여 칼을 꺼내 들고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었을 때(요 18:10) 예수는 베드로를 꾸짖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그리고는 “이것까지 참으라”(눅 22:51)고 가르쳤다. 예수께서 분노를 참지 않으신 부분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다. “화 있으라”.....
율법은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지만,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가르쳤다. 예수의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대항하라, 시위하라, 피를 흘리며 싸우라’고 가르친 부분이 없다.
우리 대한민국은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에 달한 문제들이 몇 가지 있다. 특히 교회가 대응하려고 하는 중요사안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이다.
이것은 확실히 나쁜 법안임에 틀림이 없다. 아름다운 성이 아닌 성적 타락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법안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기억하라! 대로마의 기저에 깔린 성적 타락을 통한 멸망을 기억하라! 이것은 ‘양의 탈을 쓴 이리’같은 법안이다. 기독교의 진리와 전혀 다른 곧 사단의 교묘한 계략이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시대적 징조이다.
결국 이 법안은 교회를 한쪽 코너로 몰아세우고 바르게 가르치지도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전략이다. 대중이라는 힘을 이용하여 평등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성경을 성경대로 가르치지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술수이다.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 사단은 결코 이 세상을 평화롭게 두지 않을 것이다. 혼돈과 흑암이 가득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사단이 원하는 바이다.
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사단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이 세상을 만들 것이다. 사단은 그가 만드는 세상에서 인간들이 순종하며 살기를 원한다. 개나 돼지처럼 내 세상이니 너희는 주는 것 받아먹고 소리 낼 때 짖으면 된다. 반대의 소리가 나는 것은 사단을 대적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단은 더욱 난동을 부릴 것이다.
교회가 사단의 세력을 향해 시위하고 투쟁한다고 해서 사단이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일까? 아무리 교회가 선제적 공격을 하고, 철저한 방어망을 구축한다고 한들 그들이 물러설까? 그들은 교회가 아무리 반대해도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가 할 일은 한 가지 뿐이다. 시위보다는 투쟁보다는 엎드려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이런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길 수 있게 해 달라는 구함. 저들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간구. 고로 시위 보다는 골방에서 더욱 기도하는 것만이 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