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한번 하면 나는 백번 한다’는 뜻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조익(趙翼)의 포저집(浦渚集) 권 28중 원조잠(元朝箴)에 나오는 말이다.
조익은 조선시대에 어느 학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로운 학문 활동을 펼친 열린 생각을 지닌 학자였다.
어려서 다섯 살에 시를 짓고 여덟 살에 상소문을 올릴 정도로 영특한 천재성을 지녔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아 과거도 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할아버지의 권고로 24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어느 날 문득 26세 때 늦은 나이에 사회초년생으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정작 중요한 배움은 뒷전이 되었다. 하여 훌쩍 가버린 시간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삶, 초조해진 조익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잠(箴)을 지었다. 거기에서 나온 말이 ‘남이 한번 하면 나는 백번 하리’ 이다.
중용(中庸)에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라 했다. 남과 같이 해서는 결코 남보다 앞설 수 없다. 남이 한번 할 때 나는 몇 배 이상의 각고의 노력을 하여야 남을 앞설 수 있음을 기억하자. 물론 신앙인의 모습과는 배척되는 것 같지만 <盡人事待天命>임을 안다면 결코 주어진 사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전 3장 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심었고’ ‘물을 주었다’라는 말은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더불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편 126:4~6)는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삶이 되자. 요즘도 많은 곳에서 이런저런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찾아보면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방법론에 치우친 경향들이 많이 있다. 목회자는 모름지기 조금은 미련해야 한다. 다른 이들이 넓은 길을 찾고 빠른 길을 찾을 때 좁은 길이고 구부러진 길이지만 거기서 ‘느림의 미학’을 배우고 우직함을 잃지 않는다면 주님의 갚아 주심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총회를 앞두고 여러 가지 일들이 산재해 있지만 그들 중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당연히 <헌장 개정안>일 것이다. 뜨거운 감자와 같은 이슈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라는 말처럼 정년문제와 원로대의원권 문제, 산하 모든 기관의 이사 임기의 단축안 등 많은 법규 들을 개정하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코 법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법을 시행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법에 대한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율법은 우리를 인도하는 몽학선생(멘토)와 같은 것이지만 결코 은혜와 사랑의 통로는 되지 못한다. 율법은 십자가로 소멸되고 오직 은혜와 사랑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동안 헌장개정위원회를 승인하여 발족하고 수차례의 회의와 워크숍을 통해서 좋은 의견들이 개진되었고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통해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보여 주었다.공청회 때 보여준 성숙한 의견 개진과 토론을 통해 더욱 더 좋은 결실을 맺었으리라 여겨진다. 모쪼록 수고한 모든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