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호 목사(부산 늘사랑교회)

말도 많이 하고 나면 공허해지듯 글의 흔적도 많이 남기게 되면 허해지는 법입니다. 그 동안 글발만 무성히 내뱉은 것 같아 마음이 허허로왔습니다. 하여, 잠시간 칩거의 기한을 두고 마음의 창을 닫고 있었는데, 그새 글을 부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머리도 식힐 겸, 마음도 추스르고 싶은데, 그 때문에 온통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게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글을 접고, 침묵 속에서 삶의 뒤안길을 반추해야 할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 동안 뱉어놓은 무수한 말들을 마음에 하나씩 담으며, 말만큼 살아온 삶인지를 반성해보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의 목회생활을 반성하며 얻어낸 결론이 있다면, 먼저 살고, 산 것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말로만 가르쳐왔을 뿐, 몸으로 보여준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해라고만 했을 뿐, 하자고는 말하지 않았고, 해선 안 된다 이르고서도, 먼저 행하는 우를 범해왔습니다. 목사는 죽어 입만 천당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자꾸만 저에게 주어지는 고발처럼 들립니다. 지금껏 내뱉은 말들이 더 무섭고 섬뜩한 심판이 되어 돌아온다 생각하니, 더럭 겁이 나고 두려워집니다.

어떻게 살아야만 잘 사는 길인지를 아직도 찾아 헤매는 이 무지로움이여.. 살아온 삶보다 살아갈 삶이 더 막막해지니, 목사로서의 삶은 아둔한 자가 살아내기엔 너무나 어려운 삶인 것 같습니다. 목사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범부의 길이 더 온당타 여겨도 지지만, 이 삶에서도 낼 수 없는 향기라면, 어떠한 삶이 주어져도 저는 향기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목사에게서 목사다운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건 비참한 일입니다. 그 동안 얼마만큼 목사다운 냄새를 풍기며 살았는지를 반성하면서, 요즘은 목사로서의 향기를 찾으려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녕 목사의 향기는 자신을 부술 때 시작되며, 자신을 없앨 때 완성될 거라 여깁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의 모습으로 부서질 때, 비로소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세상의 중심에 서있다고 믿었건만, 저의 중심에 세상이 들어와 있음을 깨닫고 보니, 이제야 중심에만 서려고 했던 제 아집을 바로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는 결코 주연이 될 수 없음을... 목사는 언제나 세상을 향한 조연의 자리에 충실해야 함을 깨달으며, 무대의 중심에서 조용히 내려서겠습니다. 그리고 조연의 역할을 찾아보겠습니다. 말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일을 더 많이 하며, 몸으로 먼저 살겠습니다.

그 첫 다짐으로, 교우들의 손을 일일이 웃음으로 잡아주며, 그 손안에 제 마음을 다 넣어주려 합니다. 하나도 아깝지 않고, 아까워하지도 않을 유순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그대로 넣어주고 싶습니다. 먹어만 왔을 뿐, 먹여주지 않던 동안의 삶을 반성하며, 먹는 존재로 살지 않고, 먹히는 존재로 온전히 저 자신을 내어놓을 겁니다. 밥처럼 반찬처럼 먹는 쪽보다는 먹히는 쪽에, 씹는 쪽보다는 씹히는 쪽에서 내어주는 존재로서의 제 역할을 찾아나갈 겁니다. 먼저 부서지고, 없어지는 밥... 저는 바로 그 밥이 되고 싶습니다. 교우들의 영혼을 배불릴 밥으로 제 살점 낱낱을 다 먹여주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교우들도 제 마음을 알아줄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들을 향한 목사의 사랑이 한갓 형식의 사랑이 아님을... 몸과 마음을 온통으로 내어놓은 님의 그 사랑이었음을... 그 사랑을 닮기 위해 오늘도 세상을 향해 저의 작은 몸을 조용히 내어놓겠습니다. 먹어만 왔을 뿐, 먹여주지 않던 동안의 삶을 반성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