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성 목사 (해군부산교회)

“北, 연평도 포격중”
1년 전이었던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오후의 노곤함으로 약간은 늘어질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광저우 아시안게임 소식이 궁금해 습관적으로 틀어 논 TV를 통해 속보로 떠오르는 문구였습니다. 속보를 전하는 문구를 보면서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도저히 예상이 안 되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기에 일순간 멍했습니다. 뭔가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음이 느껴졌습니다. 즉시 사무실을 뛰쳐나가 지휘통제실로 향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오보이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의 지휘통제실과는 그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급박하게 상황이 진행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의 눈빛에 긴장이 넘치고 음성은 높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속보의 내용들이 사실이고 사상자까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는 온몸이 전율 했습니다. 그리고 시시각각 전해지는 연평도의 모습에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연평도는 26년 전 군종목사로 들어와 처음으로 근무했던 곳이며 2년 3개월 동안 섬 구석구석을 누비며 20대의 마지막 두해를 보냈던 곳입니다. 지금보다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 속에서 벌거벗은 영혼을 향해 마음을 전하고 삶을 나누던 곳이 바로 연평도였습니다.

상황이 좀 파악이 되고 급박한 순간을 넘기면서 떠오른 것이 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해병대 이병으로 강화도에 배치를 받아 근무하기 시작한지 석 달이 막 넘어 가고 있는 때였습니다.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인데 강 건너 북녘 땅과 마주하고 있는 곳이어서 늘 긴장감이 감도는 곳입니다. 연평도 소식을 접하면서 아들 생각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군에 비상이 걸렸는데 최전방 철책선 앞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의 형편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포격의 숫자가 20여발, 50여발, 200여발로 늘어날수록 제 가슴에서도 포탄이 터지고 있었습니다. 부상자가 4명에서 시작하여 10명, 14명으로 늘어 가고 마침내 사망자 2명이라는 소식이 전해 졌습니다. 중상자들은 후송 중이라는 내용을 접하며 제 귓속에서는 헬기의 프로펠러음보다 더 큰 굉음이 왕왕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자와 부상자의 명단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부모의 마음인지 아니면 저의 편협한 이기심인지 유가족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이지만 제 아들이 근무하는 부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안부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수화기를 들어 다이얼을 돌리면 아들의 목소리를 대할 수 있겠지만 쉽게 들 수는 없었습니다. 비상이 걸리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올랐을 것이고 실무에 배치되어 처음 접하는 상황 때문에 정신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련해 졌습니다. 실무 배치 후 간간히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전하는 아들이었지만 제 기대와는 달리 저녁까지 아무 연락도 오질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만 3일이 지난 저녁 무렵 낯선 숫자의 배열의 번호가 제 전화에 떠올랐습니다. 직감적으로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벨이 울리기 지체하지 않고 받았습니다.

“필승! 저는 잘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끊겠습니다. 필승!”
“그래 아들 몸조심....” 한마디 말을 건네기도 전에 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는 끊어졌습니다.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살 것 같았습니다. 며칠 동안 경직되었던 몸이 풀리면서 심한 몸살 기운 같은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끙끙 앓으며 잠을 자고 나서야 죽은 넋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눈시울이 붉어 졌습니다. 사망한 장병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어 봅니다. 유가족들의 슬픔이 제 아픔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립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머리 숙여 죄송합니다. 제 아들이 아님에 안심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