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조 목사 (진주동부교회)

다음세대를 준비하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교인들과 직영으로 건축을 시작했다. 부족한 건축재정을 아끼려고 목사인 나도 작업복을 입고 매일 아침 건축현장에 나가 허드렛일을 도와야만 했다. 건축기술이 없는 나는 자재를 운반하고 정리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고, 틈틈이 쓰고 남은 각목과 작은 못 하나도 알뜰하게 모아 놓는 일을 아주 열심히 했다.

건축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건축을 책임졌던 집사는 비싼 임금을 주고 고용한 건설 인부들의 작업속도를 높여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싫은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자재비를 아끼는 것보다 일하기 편리하게 필요한 자재를 제때에 요구하는 대로 공급해 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이다.

자재는 계속 들어오고 토막 난 자재가 매일 조금씩 늘어나 쌓이게 되어 작업에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모아 놓은 자투리 자재와 쓸모없는 건축 폐기물이 쌓여갔다. 이제는 모아놓은 것들을 미련 없이 버려야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작업의 능률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일 매일 건축폐기물을 버려도, 버려야 할 폐자재의 양이 많아져 대형 건축폐기물수거 차량으로 몇 번에 걸쳐 실어 내야만 했다. 성전 건축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으니 우리가 바라는 멋진 성전은 버리고 비워야만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역설적이지만 돈을 주고 사온 자재를 돈을 주고 버려야만 건물이 지어져 간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재 값만을 계산하고 버리지 않으면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을 수도 없고,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도 없으니 버리고 비우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꿈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어느 날 폐자재를 버리면서 나를 돌아보니 내 안에도 버려야할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은 불필요하고 긴요하지도 않은 많은 것들이 낡은 가구처럼 내 안에 들어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아름답게 건축되려면 쌓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비우는 작업이 정말 필요하다는 각성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쌓아놓음을 통해 안정감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생활도 좀 더 단순해질 필요를 느낀다. 목회자로서 필요한 곳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비우는 노력이 요구되는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나의 안과 밖을 어지럽혀서 담대히 내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부끄럽다.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컴퓨터가 잘 운용되려면 가끔 필요 없는 파일과 자료를 지워야 하고 때로는 마음먹고 하드를 포맷해서 쓰듯이 나의 삶도 필요 없는 것을 비우고 버리는 삭제의 기능을 잘 활용해야 가벼워지고, 가벼워야 자유롭게 되고 자유로워야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버리고, 비우고, 가난해 지고, 낮아짐을 연습하는 것만이 인생과 목회 후반전을 잘 사는 길이라 확신한다. 모든 그릇은 겉의 아름다움이나 크기가 아니라 그릇의 안을 비우는 정도가 그릇의 가치를 부여한다. 지금쯤 지리산의 단풍은 낙엽으로 떨어져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따스한 봄날에는 순결한 잎들이 온 산을 가득 채우고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자연은 생명의 이치에 순응하고 때가 되면 조용히 비우고 버리고 지혜롭게 내려놓음으로 생명을 이어간다. 오직 인간만이 생명의 법칙을 거스르며 영광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바라건대 아집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 시대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음으로 주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 되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는 나의 마지막 꿈을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