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교수 (성결대학교 교회사 )

한동안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사이의 분쟁에 대한 소식이 연일 CNN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로켓탄이 하늘을 가르고 평화스러웠던 마을들이 화염으로 뒤덮여가는 악몽 같은 전투가 계속됨으로 인해 수백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제 양 측에서는 더 이상 어떤 전투도 계속 되기를 원치 않는 것 같은 분위기다. 신념의 명분을 내세우거나 영토 소유권을 장악하는 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마침내 지난 11월 21일 미국과 이집트의 중재에 힘입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의 정전 협정은 맺어졌다. 누구든 이 협상에 불복할 경우 엄한 죄로 다스린다는 결정까지도 함께 곁들였다.

이 정전협정이 얼마나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지만, 아무튼 이러한 결정은 양 측이 서로 자기편의 실리와 명분을 내세우며 갈등하던 국면으로부터 마침내 시각의 전환을 시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즉 다른 무엇보다도 생존권이라는 공동 선의 세계를 함께 환영한 결과다. 이 가치의 영역은 전에는 양 측 모두에게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던 세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절실해진 차원의 세계다. 덕분에 모처럼 정전의 안도감을 맛보고는 있지만, 그러나 향후 이스라엘과 가자의 운명은 여전히 이러한 공동 선의 세계를 얼마나 힘 있게 바라보고 또 보편적 가치로 확대시켜나갈 수 있을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제는 시선을 우리나라 산업 현장의 노사 분쟁의 국면으로 돌려 보자. 노와 사가 갈등을 벌이는 이유는 근로자와 경영자의 소득과 분배에 관한 상반되는 목적과 수단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모든 노사 분쟁은 서로 상충되는 가치관으로 인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모처럼 노사 간의 갈등 해결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또 그 다음 야기될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기 일쑤다.

그러나 갈등의 국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노사 간에 그동안 발생한 인간관계와 훼손된 자존심의 영역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탁월한 분쟁 해결사들은 노사 간의 인간관계 개선과 근로자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단계까지를 심도 있게 접근해가곤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얻어진 해법은 종종 신뢰감 회복과 경영 분위기 혁신을 통해 그 기업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시너지 역할을 창출하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상호 갈등과 문제를 통해서 오히려 공동 선의 가치 세계의 문을 노사 당사자들이 함께 두드려 나간 가슴 뿌듯한 결과다.

이런 갈등의 양상은 비단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일이나 또 산업현장 속의 노사 갈등의 문제뿐만 아니다.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에는 이런 갈등과 분쟁의 요인이 수없이 존재한다. 도대체 왜 이런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이익을 추구하는 두 집단의 요구가 상충하게 될 때, 이는 마치 두 자석의 같은 극을 마주 대는 것 같은 현상이다. 각자 집단이 외치는 요구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각자가 지닌 키 워드(key word)를 중심으로 더욱 양극화되어간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본다면, 양보할 수 없는 상호 분쟁이 있다는 것은, 마치 두 자석이 같은 극이기 때문에 서로 밀어 내듯이, 같은 공동 선의 가치 영역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 선의 세계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은 어떤 집단의 분쟁 당사자들 모두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계적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은 ‘실재 너머’(beyond reality) 차원의 지혜를 갈등 국면에 도입하는 길이다.

그 지혜는 바로 공동 선의 가치를 가지고 반가운 손님처럼 실재 속으로 찾아온다. 실재 속에는 여전히 갈등 구조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결의 실마리는 공동 선의 세계를 뚜렷이 바라보고 행하는 신념인들 속에서부터 풀려나온다. 오염되고 훼손된 인간 사회의 깊은 뿌리 속에는 이런 신념 그룹을 통한 세계의 회복을 염원하는 절실함이 있다. 이렇게 보면 어쩌면 며칠 앞으로 다가 온 대선을 맞이할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혼 깊은 곳에도 이런 공동 선의 세계관을 선명하게 제시해 줄 지도자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는지도 모른다.